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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se for Emily

자기와 꼭 들어맞지 않는 세계 속에서

 

 

프루스트는 위고를 열심히 읽었다.

그는 《되찾은 시간》에서 "풀은 자라야 하고 아이들은 죽어야 한다"는

위고의 말을 인용한 뒤 덧붙인다.

예술의 잔인한 법칙은 존재들이 죽어야 하고 

우리 자신도 고통이란 고통은 다 겪고 죽어야하는 것이라고.

진실이지만 서늘한 말이다.

좋은 작가는 아첨하지 않는다.

오랜 친구처럼 우리에게 진실의 차가운 냉기를 깊이 들이마시라고

무심한 얼굴로 짧게 말한다.

카프카, 울프, 카뮈, 베이유, 톨스토이....

여기서 다룬 작가들은 다 그렇다.

그들에게 삶은 계속되는 소송이거나 400년 내내 분툰한 뒤에야 겨우 이룰 수 있는 소망,

다시 굴러떨어지는 바윗돌, 보상없이 행하는 사랑,

끝없이 헤매다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겨울 숲 같은 것이다.

또는 내 속에 울음이 사는 시간, 경멸을 통해서 극복되는 운명의 시간,

사회가 찍어내는 자동인형 같은 삶에 맞서는 시간이다.

이들은, 내 책을 읽는다면 넌 아침에 슬펐어도 저녁 무렵엔 꼭 행복해질 거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너는 고통이란 고통은 다 겪겠지만

그래도 너 자신의 삶과 고유함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말해준다.

작가들은 진심으로 독자를 믿는다.

그들에게 그런 믿음이 없다면, 어떤 슬픔 속에서도 삶을 중단하지 않는 화자,

자기와 꼭 들어맞지 않는 세계 속에 자기의 고유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부단히 싸우는 주인공을 등장시킬 수 없을 것이다.

-진은영 산문집,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서문에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도 참 좋아하는 작가인 진은영의 산문집을 펼치며

(내 블로그 이름도 진은영 시인의 싯구에서 따왔다)

삶이란 원래 고통에서 고통으로 이어진다는 말에 공감했다.

 

가족 중에 한 명이 건강검진 결과가 어둡게 나왔다.

나의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그늘이 가득한 날들이다.

 

그럼에도 나와 꼭 들어맞지 않는 이 세상 속에서

나의 고유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애 쓸 수 밖에 없다.

 

어쨌든,

3주동안 글쓰기가 오늘 끝났다.

새로운 도전이었고 나름 즐거웠다.

땡큐, 오블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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