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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se for Emily

메멘토 모리

 

 

 

암투병을 하는 어떤 여성분에게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했을 때

'설거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 속의 그 평범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그리운 일인지를 알려주는 소망이어서

저릿하게 공감되었던 적이 있다.

몇 년 전 재형이가 갑자기 아파서 한 달여간 예수병원에 입원해 있은 적이 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이 계속되고 급기야 임파선 조직 검사까지 하며 피 말리는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병원의 화장실을 통해서 비친 작은 연립의 거실을 통해 나오는

텔레비전의 불빛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도 별 것 없는 연속극을 보며 웃고 까불고 싶었다.

 

커피를 일주일 만에 마셨다.

노란 맥심 봉다리 커피에 따뜻한 물을 부어 전자레인지에 30초 돌려서

호호 불며 마시는 아침 첫 빈 시간의 루틴을 십 여일만에 회복했다.

따스하고 평안했다.

답답함과 불안함에 이불을 거실에 깔고 창밖의 조촐한 밝음에 의지했던

임시 침실도 철거하고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일상을 회복했다.

다시마와 멸치국물을 내서 아욱국을 끓이고 

샴푸를 듬뿍 묻혀 욕조의 물때를 벗겨내고

밥상을 물린 후 단감을 깎아먹으며 '생생정보통'을 보고

단톡방의 시답잖은 공지글에 하트를 누르고...

 

지독한 감기 후 남편은 갑자기 다리가 아파왔다.

정형외과에서 

피검사를 해보자고 했고

혈소판 수치가 너무 낮게 나왔고

큰 병원으로 가서 다시 진찰하고

약간의 빈혈, 다리의 통증, 감기 증상 등이

영락없는 혈액종양의 징후들과 딱 맞아떨어져서

99프로 혈액종양을 의심했었다. 

 

다행히

염려했던 질병은 아니라고 한 상태이다.

한 달 후 다시 검사해 보자고 했다.

어쨌든

지옥문 앞에 까지 갔다 온 십 여일이었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을 필멸의 인간이기에

이러한 과정은 그저 죽음의 유예일 뿐이다.

 

잠시 잠깐 던져주신 평안을 다시 잠깐, 누릴 뿐이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지금의 삶을 귀함을 기억하라는 의미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언제라도 떠날 준비를 하라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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