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을 세우고
그 무릎에 가만히 무심의
턱을 고이는 데는
가을이 다 스친다
오늘은 그대의 옛일을 들어주려
난 어제의 술을 절반만 마시고 돌아와
그대가 세운 무릎을 눌러 머릴 누인다
한낮 풀벌레 소리가
쏟아지는 햇빛 속으로
슬픈 참견을 나선다
어쩐지 그대 무릎엔
이쁜 주름이 판친다
무릎을 펴고
그 무릎 위에 내 회고의 머리를
다시 누이는 데는
가을이 다 걸린다
-유종인, <가을 무릎>-
지금은 멀어진 옛 친구가 꿈에 나왔다.
한 때 우리는 서로의 옛 일을 들어주곤 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스텝이 꼬였고
그 친구를 내 마음에서 덜어내는 데에 한 계절쯤이 걸렸지만
꾸역꾸역 시간이 흘러
허술한 관계로 굳어졌다.
마지막 호의로
그의 온 세상이 그에게 다정한 날이기를 소망할 줄 알았는데
그런 소망을 가지기에도 내 마음의 기운이 딸렸음이 사실이다.
어영부영 소멸되는 관계도 있다는 것,
생명이 다한 관계에 노력이란 고된 노동일 뿐이라는 것,
그런 따위의 말들이 제법 위로가 되며
겨우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
꿈 속에서 그 친구는 우리들이 찍었던
옛 사진들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다녔다.
요망한 꿈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꿈속에서는
마음이 아무렇지가 않지 않았다.
풋감이 떨어지듯
툭!
마음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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