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도라도, 샹그릴라, 율도국, 유토피아...
모두 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상향의 이름이다.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음 직한, 이라기보다는 있었으면, 하는 바람 속에서
작가의 상상에 의해 창조된 세계다.
토마스 모어에 의해서 만들어져 이상향의 보통명사가 된 '유토피아'라는 단어는
사실은 그리스어 ou(없다)와 topos(장소)를 조합한 말로써 '어디에도 없는 장소'라는 뜻으로
그 자체로서 역설이 되기도 한다. 이상향의 본질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은하계 밖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별이 새로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거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전 우주적으로 본다면 먼지만도 못 되는 크기라는 얘기를 듣게 될 때면
나는 가슴이 마구 두근거린다.
성경 속에서 활자로서만 존재하는 관념적인 장소인 천국이 어쩌면 실제적인 장소,
즉 지리적 장소로서 가시적으로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영혼이 맑은 사람들은 죽으면 하늘의 별이 된다는 말이 진짜라는 것 아닌가.
누군가가 이 세상을 떠날 때면
호텔의 방을 배치받듯 너는 개나리별로, 너는 채송화별로, 또 너는 봉숭아별로 가게 된다는 것 아닌가.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천국이 되었든, 소설 속의 파라다이스가 되었든
지금 발 딛고 살고있는 제한적인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그 어딘가에 대한 상상은
현실의 고통과 절망을 견딜 힘이 된다.
그래서 불친절한 현실에 매몰되지 않을 도피처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게 물리적 장소가 되었든, 아니면 지향을 담은 이데올로기가 되었든,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이 나의 세계의 전부가 아니라는 교만과 불만은 멋지다.
내가 누군지는 나의 불만족 지수로 말해주겠어!
도피처는 황금의 땅 엘도라도가 될 수도 있고,
아버지의 술주정을 피할 수 있는 벽장이 될 수도 있지만
다이어터들에게는 치팅데이가 될 수도 있다.
-성산 일출봉
-성산 일출봉 정상
-유민 미술관: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
-카페, 이정의댁
어쨌든,
성산 일출봉 아래 국숫집 옆 퓨전 레스토랑 벽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휴가를 가지 않기에는 나는 너무 열심히 살았다.'
나 역시 난생처음 비키니를 샀던 곳도 바로 이마트 서귀포점이었다.
십여 년 전쯤 남편이 연수차 한 달간 뉴질랜드로 떠난 동안
친구 서너 명과 제주도 여행을 저질렀던 때였다.
육지에서라면 결코 엄두를 낼 수 없었던 빨간색 비키니를 입고 배꼽을 마음껏 드러내 놓고
펜션의 수영장에서 밤늦도록 놀았던 기억이 있다.
제주의 카페나 핫 스팟에서 만나는 여자들의 옷차림은 한결같이 파격적이다.
하지만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이곳은 현실로부터 잠시 폴.짝. 뛰어올라온 곳이니까.
누구라도 살아왔던 익숙한 방식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잠시 나 아닌 내가 되어도 아름다운 곳,
죄 되지 않는 소도(蘇塗)가 필요하지 않던가.
그곳을 유토피아라고 이름 붙이면 어떻고
해방구라고 부르면 또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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