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암호를 끼고 옥정호 산장으로 가는 길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싸라기눈으로 시작된 눈발은 도착할 즈음에는
이른 봄의 하얀 나비의 젖을 흠뻑 빨아먹은 듯
몽실몽실 하느작 하느작 통통하고도 고요한 눈발로 바뀌었다.
'먼 곳의 여인의 옷 벗는 소리'가 나오는 <설야>가 생각난다고 미화 집사님이 말했고
'고놈, 눈동자가 초롱 같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머니'의 <눈 오는 밤에>의 한 구절을 나는 떠올렸다.
정임 집사님은 송창식의 <밤 눈>을 들어보라고 했다.
눈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 하나로
우리가 서로 알기 전의 낯선 삶까지도
충분히 귀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
타인의 이야기는
그 사람의 낱낱이 귀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