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1
올 해의 생일 축하는 코로나 시대의 웃지못할 한 편의 그림이었다.
우리 반 아이들이 영상통화를 통해서 생일 축하를 해 주었기 때문이다.
아이패드 상의 나의 얼굴이 마치 영정사진같긴 했지만 잊지 못할 생일파티였다.
방학을 일주일 앞 두고 한 주의 특별휴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 금요일에 수업을 한 반에서 확진자가 나오는 바람에
어제부터 다음 주 월요일까지 자가격리 대상자가 된 것이다.
어쨌든
철 없는 얘기지만, 이 한 주일이 너무 좋다.
사려고 한 책에 붙어있는 더 탐나는 별책부록이랄까.
다들 마지못해 앉아있는 교실문을 닫고 나와
조퇴를 하고 집으로 혼자 돌아가는 길에 신발 위에 쏟아지는 유별나게 밝은 햇살이랄까.
숨바꼭질하다가 잘 못 들어간 덕석에서 소담하게 낳아놓은 계란 한 바구니를 주운 기분이랄까.
2. 식구
"덕임아, 나는 너와 가족이 되고 싶어."
정조 이산이 연모하는 궁녀 성덕임에게 하는 프로포즈다.
궁녀가 아닌 여인으로서 곁에 두고 싶다며 자신의 후궁이 되어달라는 고백을 한 후에 이어진 표현이다.
사극이라는 게 극적인 재미를 위하여 팩트와 픽션이 합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긴 하지만
조선시대 제왕이라는 지존이 한낱 궁녀에게 하는 사랑의 표현치고는 낯설 만큼 감성적이었다.
신분의 낱낱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하관계의 어휘 '후궁'이라는 말 대신
'가족'이라는 말은 얼마나 아늑한가.
보는 사람 없으면 갖다 내버리고 싶은 게 바로 가족이라고 누군가는 말하기도 했다.
어깨 위에 수북한 비듬이나 늘어진 츄리닝처럼
누추하고 예의 없는 집단이 바로 가족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고백보다도 두근두근 설렘 가득한 표현으로 들렸던 이유는
차디찬 외로움의 세월을 보낸 정조, 이산이 말한 '가족'이라는 말속에서는
여느 여염집의 옹기종기 앉은 식구들처럼
같이 덮는 포근한 이불이나
시끌짝 빙 둘러앉아 먹는 밥상,
그리고 언 손을 녹여주는 따뜻한 체온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식구가 된다는 것,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그렇게도 이루고 싶어 하는 지옥 아니던가.
3. 기쁘고 떳떳하여라
EBS <건축 탐구 집>이라는 프로에 92세의 프랑스인 신부가 사는 집이 소개되었다.
경북 의성의 작은 마을에 은퇴한 신부님이 사는 성당 겸 집이었다.
문패도 없는 그 집의 벽에 붙어 있는 글귀, '기쁘고 떳떳하게'.
한 해의 끝에 서 있다.
더해지는 한 살의 무게가 갈수록 무겁게 느껴진다.
되나케나 기쁘고 즐겁게 살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그런 철없음을 명랑함으로 포장하고 덧댈 종이가 부족하다.
드러나는 게 그대로 나인 나이가 되고 있다.
그러기에
기쁠 뿐만 아니라 떳떳하기도 해야 함을 다짐하는 노 신부의 자기 다짐을
슬쩍 훔쳐오고 싶어지는 12월의 마지막 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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