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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se for Emily

그런 날들을 지나오며

 

 

'앤 드류얀에게 바친다.

광막한 공간과 영겁의 시간 속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커다란 기쁨이었다.'

- 칼 세이건, 《코스모스》 헌사 -

 

 

《코스모스》의 헌사답다.

광막한 공간과 영겁의 시간 속에서

펜으로 찍은 점(點)보다도 작은 공통의 공간, 지구에서

공통의 시간, 동일한 세대로 만나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되고, 직장의 동료가 되고,

더군다나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기적일 수밖에 없는 우연이다.

 

 

가끔

너무 좋은 영화를 보거나, 손에서 놓기가 싫은 책을 만나게 될 때

그래서 그 감독의 차기작을 기다리거나

이름을 넣어 검색하며 새 책을 고대할 때

그들과 동시대에 산다는 것이 큰 축복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가 나의 존재 자체를 알 턱이 없다할지라도.

 

 

나이가 스멀스멀 들어가며

스스로 기특한 것 중의 하나는 '회복탄력성'이 높아진다는 느낌이다.

속상한 일, 가슴 아픈 일에 대해 하루 이틀 낑낑대다 보면

어느 순간 회복되어 원래의 마음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7, 80을 넘긴 노인들에 비할 수 없겠지만

나름의 삶의 오름들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면역력이 생기고 단단해진 결과인 듯싶지만

타인들에 대한 기대를 오롯이 붙들기에는 나 자신에 대한 파악이 너무 확실해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 자신이 엄벙한 걸 수 없이 경험하고 인식하며 나와 다르지 않을 타인에 대해 관대해졌다는 것이다.

포장하면 '성숙, 관용'이고 벗기면 '포기'라 할 수 있겠으나

예각(銳角)이 아닌 둔각(鈍角)의 스펙트럼 안에서 전에 없는 평안과 휴식도 적지 않다.

 

 

 

 

 

 

언젠가 <옥탑방의 문제아들>이라는 티브이 프로에서

'12분 안에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문제로 나왔었다.

패널들의 다양한 대답들도 그럴듯했으나

정답은 '타인의 행복을 빌어주기'였다.

 

 

나 역시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조차 마음의 고요를 흔들리게 했던,

그냥 잊고 싶은 기억과 사람들을 향해

누르는 힘이 부족하여 마음속에 뾰족하게 솟아 오르는 날에는

그 사람들의 평안을 읊조리고 싶어진다.

그 기억들에 작은 꽃 단추들을 달아줘야 할 듯하다.

 

 

그런 날들을 지나

비척비척 그런 시간들의 작은 터널들을 통과하여

조금씩 아주 조금씩 평안에 이르렀다고,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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