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 rose for Emily

모과

 

 

먹지는 못하고 바라만 보다가

바라만 보며 향기만 맡다

충치처럼 까맣게 썩어버리는

그런 첫사랑이

내게도 있었지

 

- 서안나, <모과> -

 

 

 

 

 

 

 

 

내겐 첫사랑이 없다.

잠시 잠깐의 설레임으로 흔들흔들 멀미가 난 적은 있지만

그것마저도 혼자 바라보다가 혼자 시들해지는 짝사랑이었을 뿐이다.

 

그래도 요즘처럼 연일 비가 내려

마음이 젖는 날에는

가끔씩 노란 장화를 신고 첨벙첨벙 찾아가 보고 싶은

젊은 날의 골목들이 있다.

 

코너를 돌면 문이 보이던 써클룸.

좀체 익숙해지지 못하던 내게 건네주던 말의 온기와 하얀 셔츠,

나 말고 또 다른 사람을 향해 바라보던 더 따뜻한 눈빛,

충치처럼 썩어가던 내 마음.

 

연일 비가 내리는 요즘이다.

오늘도, 세월이 흐른 후 어느 비 오는 날에

고개 돌려 찾아가 보고 싶은 그런 날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A rose for Emily'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족사진  (0) 2020.08.14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0) 2020.07.22
You complete me  (0) 2020.07.15
엄마의 담박질  (0) 2020.07.07
새벽종  (0) 2020.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