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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se for Emily

새벽종

 

마음속에 멍처럼 남아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심심할 때면 얼굴을 비춰보던 고향의 우물 같은 그런 시간이기도 합니다.

강원도 단강에서 첫 목회를 할 때였습니다.

새벽 4시 30분 새벽기도회를 위해 10분 전 종을 쳤습니다.

새벽마다 울려 퍼지는 잔잔한 종소리를 하나님이 부르시는 소리로 알고 자석에 쇠 끌리듯

예배당을 찾아 첫 신앙을 가진 동네 할머니도 있었습니다.

새벽종은 그만큼 의미 있는 것이었지요.

기억에 남은 그날은 망설인 끝에 종을 치지 않았습니다.

긴 가뭄 끝에 단비가 왔고 밀렸던 모내기를 하느라

어둠 속 흙투성이가 돼 돌아오는 마을 사람들을 전날 밤 봤기 때문입니다.

종을 치면 그 소리를 듣고 고단한 몸을 일으켜 교회에 나올 교우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새벽에 필요한 하늘의 은총은 피곤함을 이겨낼 꿀잠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오래전 한 새벽, 치지 못한 종은 숙제처럼 남아 있습니다.

믿음과 인간다움의 거리는 얼마나 될지 묻는 질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아침마다 한 동료가 카톡으로 배달해 주는 <겨자씨>라는 칼럼의 오늘 내용이다.

몇 초 안에 쓱 훑어보고 덮어버리는 날도 있고

안 읽는 날도 많은데 오늘 내용은 특별히 눈과 마음에 들어왔다. 

 

신앙생활은 어쩌면 이 목사님의 말대로

믿음과 인간다움 사이의 거리 조절의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모습은 여러 가지이다.

이 분이 정말 내가 생명의 구주로 모시고 살 만큼의 깊고 큰 존재인가, 라는 의구심이 들만큼

정이 떨어지게 잔인하고 냉혹한 면이 있는가 하면

파우스트가 악마에게 그러했듯

내 영혼을 송두리째 걸고 거래해도 밑지지 않을 만큼 자애롭고 넓은 존재로 표현되어 있기도 하다.

하나님의 대표적인 속성인 '사랑과 공의'를 시의적절하게 사용하며

당신이 누구시며 어떤 일을 하시는가를 전람하기 위한 전략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동일한 성경을 바탕으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신자들의 눈에 비치는 하나님의 모습은 알록달록 다채롭다.

누군가에게는 따듯한 하나님, 누군가에게는 무한 용서의 하나님, 또 누군가에게는

눈을 부라리며 죄를 캐어내어 단죄하시는 두려운 하나님..

 

죄가 많은 내게, 하나님은 무서운 분이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넷 반, 넷 반의 반, 넷 반의 반의 반.... 다섯~!!!!!

함부로 나대는 나를 향한 그분의 오래 참으심은 무한 참으심이 아니다.

열을 셀 때까지? 아니다. 그렇게 오래는 안 참아주신다. 다섯 셀 때까지 정도이다.

그리고 다리몽댕이를 분질러버리신다. 우지끈.. 여러 번 당해봤다.

여러 번 경고하시고 반의 반의 반의 반....의 소심한 유예의 너그러움을 보이시기는 하지만

나를 향한 그분의 최종 목적이

'니 맘대로 살든가 말든가(옛사람의 모습)'가 아니라

'내 새끼로 살려면 내 맘대로 해야지(주님의 품성을 드러내는 삶)'이기 때문에

내박쳐두지 않으신다. 손길을 뻗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속 나의 하나님의 모습은 아빠 아버지(롬 8:15)이시다.

두 발등에 나의 작은 발을 올리고 손 잡아 노랫가락에 맞춰 발 무등을 태워 주시는 분이시다.

쉼 없이 상상의 이야기를 조잘대는 빨강머리 앤을 향해 빙긋이 웃으시는 매튜 할아버지시다.

한 번만 눈감아 달라고,

당신이 만들었으니 내 성격 아시지 않느냐고,

나도 나름 노력하고 있다고,

그래도 내 마음속 원픽은 하나님 당신이라고

옷소매를 붙잡고 늘어지며

허락할 때까지 땡깡을 부릴 수 있는

말이 통하는 분이시다.

대화가 가능한 분이시다.

그 새벽 치지 못한 새벽종을 이해해주시고도 남는 분이시다.

 

하지만

죄짓고 아무 일도 없는 척 헐레벌떡 집 안으로 돌아오는 나를 훤히 꿰뚫어 보시면서도

행여 식을세라 스댕 밥그릇, 아랫목 목화솜 이불 아래 덮어두고 기다리시는 분이시지만

어디까지나 그분은 창조주이시고

나는 쫄따구 피조물일 뿐이다.

그러기에 욥의 고백처럼 '손으로 입을 가릴 뿐(욥 40:4)'이다.

 

어쨌든

그런 분이 내 삶 안에 깊숙이 계셔서 이번 생은 대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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