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게 쉰 하루였다.
오랜만에 미세먼지 없는 맑은 날이어서 아침부터 집 안의 모든 창문을 열고
맑은 공기를 집 안 가득 들여놓았다.
숨도 두 배로 쉬었다. 이 고운 공기를 하아 하악 맛나게 흡입해야지.
점심을 먹고 꽃집에 가서 아이비 작은 화분을 몇 개 샀다.
"저는 똥손인가봐요. 왜 사는 화분마다 잘 키우지 못하지요?"
"아이구, 사면서 갸가 주는 기쁨 크잖아요. 며칠만 같이 있으면 어때요, 그걸로 그 값 충분하잖은가요?"
그날그날 행복하기.
마치 미래가 없는 사람처럼 살겠다는 오래된 다짐을 다시 꺼내보았다.
몇 년 전 경제적으로 폭삭 망해버린 후로
갚아야 할 빚이 줄어드는 회복,
십일조의 헌금을 떼어먹는 궁극의 절약을 하지 않아도 되는 형편을 꿈꾸며
소박하게 마음을 다독이던 때가 엊그제였는데,
또 몇 년 전 우리 이쁜 똥꼬가 사경을 헤맬 때
생명을 살려주시기만 하면, 그러기만하면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겠다고, 감사로 넘치는 삶 살겠다고
주 앞에 서원했던 때가 엊그제였는데,
벌써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새 아파트로 이사 가는 윤샘을 보고 부러워하고
외제차로 바꾼 김샘을 보며 내 낡은 차를 우울하게 바라보고
잘 나가는 남의 집 자식들을 보며
혼자 베란다에 앉아 맥주캔을 깠다.
6월의 초록 공기를 집 안 가득 들이고
화분을 정리하고
엽서에 그림 한 장을 그리고
저녁에는 교회당 청소를 하고
오늘 길에 다슬기 수제비를 배 부르게 먹고 왔다.
내 마음을 채우고 있는 두 가지가 있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과 내 마음 속 도덕률, 이라고 했던
칸트의 묘비명처럼
베란다에 앉아 주룩주룩 내리는 초여름의 장마비를 바라보며
이대로 넘치게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멀리 바라보지 말고
그날그날 행복하면 그만이다.
오늘 사온 하나에 삼천원짜리 아이비 작은 화분이 내게 주는 짧은 행복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