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은 늘 행복에 끌려서 그 주위를 맴돌지만
행복은 그저 잠시 연민을 보일 뿐
결국 불행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는 거죠.
인간의 감정 중 가장 쉽게 지치는 게 연민이에요"
이 영화에 대한 평에서 이동진씨가 한 말이다.
<세상의 모든 계절>이란 영화의 원 제목은 <Another Year>이다.
another라는 단어 속에는 새로움과 소망의 뉘앙스가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새로운 해'에 대한 관심을 가질 여력 대신
그날 그날을 겨우 겨우 살아내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의미에서
제목 안에도 감독의 역설은 숨어있는 것 같다.
제목만 달랑 알고, 검색하여 무료로 보게 된 영화,
메어리를 싱글샷으로 잡은 롱테이크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야
감독이 애정을 품은 인물이 누구인가가가 번뜩 와 닿았다.
사실, 영화 보는 내내,
알콜중독에, 수다스럽고, 정신 사납고,
가당치도 않은 상대에 대해 감정을 들이미는 메어리가 불편하기만했다.
오히려, 메어리를 비롯하여 갖가지 모양의 결핍을 가진 사람들의 문제점을 상담해주고
친구처럼 가까이 하며 연민을 베풀던 제리와 톰 부부의 온화함과 고상함에 끌렸다.
하지만
톰과 제리 부부와 메어리가 유지하고 있던 외형적 균형은
메어리가 그 부부의 젊은 아들에 대한 각별한 감정을 잠시 내비치는 순간부터 균열이 생긴다.
싸늘해진다. 더 이상의 온화함은 없다.
불행한 자들의 불행의 원인을 캐물어 상담을 해주고
정원에 나가 땀 흘리며 일을 하고,
따뜻한 불빛이 흐르는 침실에서 각자의 책을 읽고
사랑이 필요한 자들에게 온기를 나눠주는
그들의 온화함에는 '야마리까지게도' 부족할 게 없다.
하지만
그 상대가 자신들의 삶의 영역까지 들어오는 기미가 보이자
달.라.진.다.
'뭘 더 원해?'이다.
시혜적 친절이다.
힘 없는 자만이 용서를 구한다.
사과할 것 없는 것을 사과하고 다시 그들의 식탁에 같이 앉게 된 메어리는
새해에 대한 계획으로 신명난 그 가족들의 왁자지껄함 속에서
차츰 차츰 존재가 없어진다.
누구하나 사랑해주지 않는 메어리를 눈여겨 보는 자는 감독뿐이다.
그만이 한 없이 작아져서 보이지 않는 메어리를 싱글 롱 테이크로
끌어내어 손 잡아 준다.
봄에서 시작된 영화는 겨울에서 끝난다.
시작과 끝.
사랑은 끝내는 게 아니라 '끝나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란 얼마나 쓸쓸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