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이 없다,
라는 것은 감정의 노화라는 측면에서나
삶의 수레바퀴를 가동시킬 욕망이라는 오일이 엔꼬로 가고 있다는 측면에서나
확실히 쓸쓸한 일이다.
하지만
간절하다, 라는 심리는 워낙 많은 에너지와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까닭에
내겐, 도망치고 싶은 심리 상태의 한 지점이기도하다.
고양이 발바닥같은 탄력으로 유연하게. 신속하게. 그리고 고요하게.
더 이상 무엇에도 간절하고 싶지가 않다.
그 아름다운 독극물에 내 마음이 빵꾸가 나고 싶지가 않다는 것이다.
교회를 다닌지 기십년이 되었지만
철야기도도, 새벽기도도, 금식기도도 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전적인 우리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 허다하지만
그 분께 죽어라고 떼를 쓰고 싶지가 않다.
맛있는 밥을 굶어가며
꿀같은 잠을 줄여가며
악다구니로 외쳐가며 나의 간절함을 아뢰고 싶지가 않다.
나의 하나님은
나의 조용하고 어눌한 더듬거림에 동일한 말줄임표로 충분히 다정하게 집중하시는 분이라는
따뜻한 착각이 내겐 있기 때문이다.
- 고산 휴양림, 송천동 건지산, 도로공사 수목원
요즘 신록이 참 이쁘다.
빨강머리 앤을 흉내내어 말해본다면
초여름의 신록이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게 참 기쁘다.
아마도 이 세상을 떠날 때
지상에서 잊을 수 없을만큼 아름다웠던 것들에 대해 말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 즈음의 숲에 대한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을 것 같다.
5월 모판의 개구리 울음소리처럼 곽곽곽곽
해결되지 않은 현실의 소망들이 여전히 소란스럽지만
오늘은
바램도 개켜두고,
기도도 잠시 멈추고,
온갖 간절함에서 벗어나
5월의 숲 속을 걷고 싶다.
내 혈관을 타고 연한 잎새의 초록물이 수혈되도록.
그 연두빛 황홀이 내 몸을 남실남실 채우도록.
아무 일에도 아무렇지 않은 나무가 되도록.
숲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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