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시절 인터뷰 때마다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는 단어 '때문에' 때문에
지적을 많이 받았던 박지성이 이번 러시아 월드컵의 해설을 맡았다.
'때문에'를 피하기 위해 고심분투했던 그는
또 다른 단어의 재앙을 만났는데 그것은 바로
'어떤'이었다.
배성재 아나운서와 콤비를 이루어 중계를 했던 한 게임에서
그가 '어떤'을 사용한 횟수는 182회였다고 한다.
그 다음 게임 해설에 앞서 그는 모니터 앞에 쪽지를 하나 붙여 놓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는 자판기 커피이고
그 다음은 맥심 봉지 커피이다.
아들이 카페 사장님인데 엄마의 입맛은 어쩌면 그리도 저렴하냐는 비아냥을
수시로 듣지만 출근하여 첫 빈 시간에 마시는 그 커피는 내겐 최고이다.
교무실 곳곳에서 드립커피를 내리는 팀들이 있지만
그들이 필터링을 마치고 내게 권하기 전에 서둘러서(권할까봐 떨린다)
나의 커피를 준비한다.
촌스럽지만 즐거운 나의 습관이다. 행복한 루틴이다.
몇 일 전 프루스트와 천상병을 비교한 글을 읽었다.
프랑스의 고급 부르주아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유복한 삶을 살았던 프루스트는
그의 책에서
'이제 나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먼저 통과하지 않으면 다른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게 되었다'라는 말로써
화해되지 못한 미련과 한탄의 목소리를 표현했다고 했다.
반면에, 모두다 알다시피
물질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참혹한 가난을 겪어야했던 천상병의 시 안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궁핍에 지진 노인이 아니라 소풍를 갔다가 기쁘게 집으로 돌아가는 한 아이의 모습이라고.
부자인 프루스트는 얻지 못하고 빈자인 천상볌이 얻어내 선물은 세상의 아름다움이라고.
또 일 년의 절반이 지났고
나머지 절반이 시작되었다.
행복한 사람은 습관이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때문에가 되었든, 어떤이 되었든
혹은 노란색 맥심 봉다리 커피가 되었든
인 박힌 습관에 자신이 걸려 넘어지지만 않으면 어떤 습관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듯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었었다고' 회상할 날들을 살면서
세상의 아름다움에 쉽게 쉽게 넘어가는 쉬운 여자가 되고 싶다.
장마 후의 선명한 뭉게 구름이나
새벽녁 창가에 걸린 보름달이나
터널을 이루는 느티나무 숲 속을 걷는 초록빛 황홀이나
토요일 오후 베란다 내 의자에 앉아 읽는 책들이나...
여전히
그 따위 것들에 자주 자주 마음을 흠뻑 빼앗기는 그런 습관에 인박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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