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게 꽃짐이다.
올해 잔나비띠 88세이고 경증치매 증상이 있다.
겉으론 너무 너무 멀쩡하시다.
전화를 받는 목소리에 교양이 넘치고
여전히 가끔 유머도 잘하시고
자존심도 쎄시지만
정수기의 물을 받아 드시는 것도
용변 후 화장지 처리도
계절에 따른 옷을 차려 입는 것도 못하신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밥상을 차려 드시지 못한다.
사실상 혼자 사실 수 있는 능력이 없는데
그 큰 집에 홀로 계신다.
모실 수 있는 형편의 형제들이 모시고 갔다가도
한사코 '왜 내 집 놔두고 내가 여기 있냐'라는 고집에 다른 방도가 없다.
어쩔 수 없이
가장 가까이 사는 내가 바쁘다.
오전은 요양보호사가 돌봐주시지만 저녁식사는 나와 막내 올케가 번갈아 가며 책임을 지고 있다.
나는 화, 금, 토, 일. 일주일에 네번 엄마 저녁식사를 차려드리러 엄마집에 간다.
퇴근 후 마트에 들러 간식거리와 반찬거리를 사서 저녁식사를 해결해 드리고, 치매약을 먹여 드리고, 이부자리를 봐 드리고
집에 오면 여덟시가 넘는다.
문 밖을 나올 때는 꼭 안아드린다.
엄마, 잘자, 또 올께, 우리 막내 욕본다 정서방 욕허겄다, 아녀 암시랑토 안해, 엄마 자주 봉게 좋아, 아무 걱정마, 내가 다 지켜줄게
라고, 하지만 가끔은 피곤에 녹초가 된다.
힘들다는 생각은 안 해봤지만.
가수 전인권은
30대 때 엄마를 잃고 오랫동안 지독한 우울증으로 힘들었다고 했다.
헤어나올 수 없는 끝없는 그리움 끝에 만든 노랫말이 그의 노래 <사랑한 후에>라고 한다.
속수무책의 그리움에 모든 게 정지된 남자 어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긴 하루 지나고 언덕 저 편에 빨간 석양이 물들어어 가면
놀던 아이들은 아무 걱정 없이 집으로 하나 둘씩 돌아가는데
나는 왜 여기 서 있나...
언제부턴가는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나는, 힘겹다.
견뎌내는 일 외엔 달리 방법이 없는 말, 그리움.
더군다나 끝없는 그리움이라니.
숨이 막혀온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
서부우회도로를 운전하고 가다보면 가끔 석양을 만난다.
옛날 우리 논이 있던 곳, 가마골 너머로 꼴깍 해가 넘어가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가끔
차가 빨강 신호등에 걸렸으면 하는 순간이 있다.
요즘의 염려는
엄마가 돌아가시면 어쩌나 보다도
언젠가는 돌아가실 우리 엄마를, 그 후 너무 그리워할 내가 눈에 선하여
그 이후가 지레 겁이 난다.
'째깐한 몸댕이로 동동거리며 다니는'
막내딸을 항상 안쓰러워하던 우리 엄마를 향한
끝 없는 그리움에 속수무책일 나의 모습이 눈에 선하여.
그냥 그렇게
엄마가 석양처럼 걸려 계시면 좋겠다.
빨강 신호등에 걸려 계속 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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