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서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 밀란 쿤데라 <무의미의 축제>, 147쪽 -
피부과에서 두 시간 나의 차례를 기다리면서
무료하여 책을 읽었다.
모처럼 기린로 근처에 나온 게 아까워
한옥마을 골목을 서성였다,
하찮고 의미없다, 나의 삶이 그러하다는 속된 키치가
토요일 오전의 한가한 가을햇살 속에서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엄마가 좋아하는 간장게장을 사들고 동산촌에 가서 엄마랑 저녁을 같이 먹었다.
초저녁에 잠이 들어버린 엄마 옆에서
잠을 방해할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쿤데라의 남은 부분을 읽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저는 사과쟁이에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저를 이렇게 만들었어요."
잘못이 상대에게 있음에도 먼저 사과하곤 하는 알랭처럼 나는
서두를 일 없는데도 신발의 오른쪽과 왼쪽을 바꿔 신곤하는 팔순의 잠든 엄마 옆에서,
그 누구보다도 엄마께 사과를 하고 싶었고
엄마 나이의 쿤데라는 내게
존재의 본질이 원래 하찮은 거라고, 의미없는 것이라고, 그런거라고, 그런거라고... 내 머리를 만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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