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 잊고 폰을 집에다 놓고 왔다.
접속의 뚜렷한 대상도 없이
수시로 들여다보던 괴물로 부터 분리된 하루다.
오전을 지날 때는 답답하더니
오후가 되자 모처럼의 무료함이 좋다.
무언가로부터 놓여난 하루 속의 나는
고요해서 훨씬 이.쁘.다.
11월의 첫날이다.
한 때,
늙은 여자의 등짝처럼
그 누구도 눈 여겨 보지 않는 달이라는 이유로
좋아하는 척 했던 계절이다.
하지만,
솔직히 11월이 무슨 매력이 있겠는가.
아늑한 우울의 가을도, 연말의 활기의 12월도 아닌
에미맛도 애비맛도 없는 달, 딱 그 지점이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좋아했던 것 같다.
불연속의 지점에서만 누릴 수 있는
별 볼 일 없음, 한가함, 견뎌내야만 보낼 수 있는 지루함.
김주혁이 죽었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5차전을 보다가 막판에 투입된 수비수 김주형 욕을 하다가
폰을 보니 검색어 1위에 김주형이 떴다.
'우리만 욕한 게 아니었네. 김주형이 1위야'
다시 보니, 김주혁이었다.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듯한 그리움이야 잊는다해도 한 없이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음을 잊지 말고 기억해달라던 그의 노래 속의
한 없이 쓸쓸했던 표정이 생각났다.
그가 오랜동안 사랑했던 여자, 이요원이 했던 말도.
"인연이란 운명의 장난이나 우연까지도 포함하는 것 같아요"
11월이다.
애써 견뎌내야만 겨우 시간을 통과할 수 있는,
내가 선택한 그 지루함.
그 덕분에
조금 더 내가 나에게 반할 수 있는 계절이었으면 좋겠다.
운명의 장난이나 우연 앞에 잠잠히 굴복당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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