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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se for Emily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의 삽화로도 우리에게 친숙한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의 책 <안자이 미즈마루>의 부제는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림 그림'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저는 뭔가를 깊이 생각해서 쓰고, 그리고 하는 걸 좋아히지 않습니다.

열심히 하지 않아요. 이렇게 말하면 '대충 한다'고 바로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지만

대충 한 게 더 나은 사람도 있답니다. 저는 그럼 사람 중 한 명이지 않으려나요.

저는 반쯤 놀이 기분으로 그린 그림이 마음에 들더군요.

진지함이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일본에서는 흔지 않은 스타일이죠'

 

과연 그의 그림은 아주 어설픈 듯하지만

바로 그래서 참 매력적이다.

잘 그릴 수 없어서가 아니다. 잘 그리지 않아서다.

힘을 줄 수 있는데 힘을 빼버렸기 때문에 생겨나는 매력이다.

- 김하나의 <힘 빼기의 기술> 중 -

 

 

 

 

 

 

 

 

못을 박다가 '맞창'이 날 때가 있다.

낭패다.

옷을 걸든 가방을 걸든 든든하게 힘을 지탱해줄 정도의 힘을 가진 못이 박히려면

지지벽의 두께가 충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경우

힘주어 못의 정수리를 두드리다보면 순간, 쑥 힘이 빠질 때가 있다.

박힌 게 아니라 구멍이 뚫린 것이다.

그것을 우리 동네 어휘로는 '맞창이 났다'고 했었다.

힘을 쓰지 말아야 할 곳에 힘이 들어간 까닭이다.

 

 

개학을 했다.

다시 돌아온, 익숙하고도  별 볼 일 없는 일상이 오래 입은 옷처럼 편하고 정겹다.

지난 여름방학, 그리고 얇은 벽에 못질을 하듯 많은 생각을 남긴 해외 연수.

 

 

달음박질보다는 천천히 걷기를,

새롭고 세련된 것보다는 낡고 익숙한 것을,

한낮의 주황색 햇살보다는 새벽의 푸른 어스름을,

'완주와 기록에 의의를 두기보다는 삶을 선물로 여기게 만드는 순간들을 더 천천히 들여다 보고 싶다.'

 

 

안자이 미즈마루처럼

나도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리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어깨의 힘을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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