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친정이지만
대부분 운전을 하고 급히 오가는 길이기에
동네 안을 걸을 기회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잠시 잠시 속도를 늦추면서
내 고향 동산촌의 실리, 늙고 좁은 골목길들을 바라보곤하면서
천천히 저 길을 다시 길어봐야지 하곤 했었다.
이러다 놓치겠다 싶었다.
길다란 동네의 가운데를 중심으로
우리 옴마집이 속해 있는 아래것티(아랫동네)는 빼고
웃것티에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것이었다.
엊그제 한 시간 일찍 퇴근할 기회가 있어서
엄마댁을 갔다. 모시고 이른 저녁을 먹은 후
돌아오는 길에 동네 한 곳에 주차를 하고 골목길을 이곳저곳 혼자 걸어보았다.
숫기없는 내가 조용조용 걸으며 내 삶의 절반을 보냈던 동네 뒷편의 좁은 길,
가슴 한 곳이 헐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참 스산했다.
그 다음날 아침 출근을 하며 옆 좌석에 탄 아들에게
천원짜리 하나를 주었다.
'뭐하신대, 천원가지고 뭐하라고'
'어, 엄마가 초등 6학년 때 이모는 고3이었거든.
아침마다 동네를 같이 걸어서 학교를 갔는데,
이모는 가끔 10원짜리 하나를 나에게 줬어.
그거면 뽀빠이를 한 봉다리 사먹을 수 있었는데,
그 아침들이랑
발목에 이슬이 채이던 골목길이 자꾸 생각나네.
사탕을 사러 가다 만난 싸낙배기 민숙이에게 걸려 머리핀을 뺏겼던 그 길,
용림이네 집에 모여 해저물도록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독치기를 하던 그 곳,
아버지의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뙤약볕을 달음질 쳤던 그 길,
민숙이도, 용림이도, 그리고 우리 아버지도
더 이상은 내게 아무런 소식을 주지 않는다. 줄 수가 없다.
그녀들은 어느 골목길을 서성이고 있을까.
어디에서 젖은 신발을 말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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