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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se for Emily

소매를 살짝 잡아당겨줘

 

 

 

 

꿈을 자주 꾼다.

대부분 스토리는 잊어버리지만

기억으로 남아있는 꿈 속의 분위기는 생기 가득하고 즐거워서 내겐 단편소설 같다.

잠 들기 위해 침대에 누울 때마다

'오늘은 과연 어떤 꿈을 꿀까?'하는

기대와 설레임이 있을 정도이다.

.

 

가장 행복한 꿈 중의 하나는

물 속을 헤엄치는 꿈이다.

엄청나게 크고 맑은 호수에서

기가 막힌 속도로 물 속 깊이, 또 수면 위로 드나들며

돌고래처럼 자유스럽게 헤엄을 치며 밤을 구비치다 깨고나면

그 잔상의 물기가 내 피부에 촉촉하다.

 

 

나의 꿈 얘기를 하면 주변 사람들은

꿈을 기다리는 나를 부러워하기도 하고

철딱서니없음으로 치부하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자연은 실로 모욕적인 방식으로 우리에게 암시하고 경고한다.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는 게 아니라 이빨을 뽑아놓고 머리카락을 뭉텅뭉텅 뜯어놓고

시력을 훔치고, 얼굴을 추악한 가면으로 바꿔놓고 요컨대 온갖 모멸을 다 가한다.

게다가 좋은 용모를 유지하고자 하는 열망을 없애주지도 않고

우리 주변에서 계속 눈부시게 아름다운 새로운 형상들을 빚어냄으로써 우리의 고통을 한층 격화시킨다."

 

데이비드 실즈의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라는 책을 읽고 있다.

그 책 소개의 글에서 따온 죽음과 늙음에 대한 에머슨의 이야기이다.

 

 

차츰, 아니 갑자기

삶이 내 육체에 모멸을 가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수시로 붓고 피가 나는 나의 잇몸을 살피더니 의사는 조만간 어금니를 빼야할 것 같다고 했다.

팔에는 테니스 엘보우가 와서 물건 들어 올리기가 겁난다.

조금만 책을 읽을라치면 눈알이 빠지려고한다.

아무리 메이크업을 덧칠해도 피부는 삐들삐들하다.

 

 

 

 

 

 

 

 

하지만

주변은 여전히 아름답고

반짝거리고 싶은 열망은 시들지않는다.

 

 

그리고

여전히 물 속을 헤엄치고 다니는 꿈을 자주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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