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한 봉지>
보름이 넘도록 알 수 없는 신열에 시달리는
장정 아들을 병원에 두고, 잠깐 집에 가는 길,
소문에 밀린 계집아이처럼, 나는
달그림자에도 뾰족뽀족 소스라쳤다
한 밤중, 급히
어항 속에 먹이를 던져주고
말라가는 화초에 물을 부어주다가, 문득
등짝에, 어린 체온이 고스란히 닿던
젊은 엄마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돌아 온 병실 머리 맡에
야물게 묶은 검정 봉다리 하나
조금씩 어린아이가 되어가고 있는
팔순 넘은 우리 엄마,
방금 볶았다며 고소할 때 먹으라던 그것,
봉지 열어보니, 날땅콩이었다
마음이 몸을 어쩌지 못하고
몸은 마음을 외면하는
이 지독한 외로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