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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se for Emily

나의 기요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담임선생님께 썼던 내 생애 첫 편지의 글귀는

지금도 기억이 난다.

 

" 지금 엄마는 제 옆에서 재봉틀로 저의 베개닛을 만들고 계셔요."

 

안부 외에 뭘 써야할 지 난감해하는 내게

언니가 불러준 '별 것 아닌' 그대로의 묘사는

처음 보는 저녁별이 오래도록 총총 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한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1996부대 안재학 아저씨는

튼 손 같았던 나의 사춘기 초입,

편지로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국군장병아저씨였다.

더디게 지던 어제와 오늘을, 재잘거리듯

글로 써서 보내고, 답장을 받으며

중학교 3년을 견뎌냈다.

 

 

 

 

 

 

 

나쓰메 소세키의 중편 <도련님>의 주인공 '나'는

힘들 때마다 '기요'를 생각한다.

그리고 편지를 쓴다.

하숙집을 옮기는 바람에 늦게 늦게 도착한,

우표가 덕지덕지 붙은 기요의 편지를 몇 번이고 읽는다.

"방 안은 조금 컴컴해져서 아까보다도 읽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마침내 툇마루 끝에 나가 앉아서 조심조심 읽었다."

기요는 어릴 적부터 자기집에 있었던 나이 든 늙은 하녀이다.

 

 

 

도착하는 데,

스무날이 넘게 걸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 날이 있다.

"지금, 엄마는 곁에서 저의 베개닛을 만들고 계셔요"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내 마음의 온도와 농도만큼만으로

딸기처럼 우표가 덕지덕지 붙은 편지를 들고,

툇마루로 옮겨갈 나의 기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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