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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se for Emily

아홉 반의 반의 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나

관계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 의례적으로 하는 말들이 있다.

 

"언제 밥 한 번 먹자."

"너무 염려하지 마, 잘 될 거야."

"도울 일 있으면 말해."

"위해서 기도할게요."

 

공허한 말들인 줄 알면서도 때로는 위로가 된다.

종일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쥔 손 안에서

반갑게 느껴지는 잘 못 걸려온 전화벨의 파동이나

번화가의 낯빛 좋은 청년이 아무에게나 베푸는 프리 허그처럼,

 

이게 진짜 마지막이야, 진짜다.

열 번 셀 때까지 안 하면 끝이야.

하나

두울

세엣

네엣

다섯

여섯

일곱

여더얿

아홉!

 

그 뒤에 느릿느릿 붙이는

특별한 숫자,

 

아홉 반의 반

아홉 반의 반의 반

처럼.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 망설임의 뒤끝 긴 숫자가

우리를 이 지상에 존재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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