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화백의 그림 속 여인같다.
알러지로 눈 주위가 검게 변한 요즘의 내 얼굴이 그러하다.
자주 거울을 들여다보게 된다.
거울 속의 우울은
깊은 우물 속의 서늘한 공포나
그림 속 여인의 눈자위의 하얀 공허와 닮아있다.
백일홍처럼 자주 웃고 싶은데
자꾸 바닥이 미끄럽다.
- 선희야 그 영화 봤니? 할머니 할아버지 나오는 영화말야.
님아 뭐 어쩌고 영화말야. 그 할머니 분위기, 꼭 너 같지 않든?
주혜와 점심을 먹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난 친구, 주혜는
나의 청춘의 때를 가장 잘 기억하고 있는 친구이다.
그뿐만 아니라 덜컥 나이가 들어버린 현재와,
형편없이 늙어 갈 미래의 낡은 날들을
가장 안심하고 보여줄 수 있는 친구이다.
장예모 감독의 영화 <5일의 마중>에서
주인공 공리는 매월 5일이 되면 역으로 마중을 나간다.
20여년 전, 문화대혁명의 반역죄로 수용소로 끌려간 남편이
시대가 변함에 따라 이미 석방이 되어 그녀 곁에 돌아왔음에도
기억상실증에 걸린 그녀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많은 노력에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리고 5일이 되면, 역으로 가는 아내를 따라
그도 역시 같이 마중을 따라간다.
주혜는 나에게 머리를 다시 길러보라고 했다.
긴 머리는 목의 검은 흉터를 가려줄테니
여름에도 목이 파인 원피스를 다시 입어보라했다.
아름다울 것 한 개도 없는 내게서
핀셋으로 정교하게 '고운 것'들을 골라 뽑아
'이게 너야'를 보여주곤 하는 김응용감독 닮은 주혜는
매월 5일이 되면
나의 손을 잡고 기차역으로 같이 가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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