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석에 앉은 엄마가 연신 '이쁘네, 이쁘네'를 연발하시며 어루만진 것은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있는 동그라미 모양의 은색 조그셔틀이었다.
주간보호센터에서 집에 이를 때까지 그 어여쁜 장치에 대한 애정표현은 계속되어
만지고 돌리고 쓰다듬기를 그치지 않았다.
'엄마, 그렇게 맘에 들면 떼어서 드릴까?'
나의 농담에 손사래를 치셨지만 문득, 엄마가 30년만 늦게 태어나셨더라면, 이라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가정을 해 보게 되었다.
만약 그랬다면
엄마도 운전을 하셨을 것이다.
골프도 하셨을지 모르고, 첫눈이 오는 날에는 카페에 앉아 친구들과 차를 마셨을지도 모른다.
상상도 해 보지 않았기에 엄마가 누리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해본 적도 없었다.
드라이버를 날리며 굿샷!을 외치는 엄마를 상상하다가 옆자리를 바라보니
91세의 치매 노인 우리 엄마는 여전히 은색 장난감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의자의 절반이 남을 정도로 조그맣고 여린 몸으로 채송화처럼 해맑게 앉아 있었다.
out of joint, 그냥 시대와의 어긋남일 뿐이다.
근래 나의 잠자기 전의 루틴은 멘소래담으로 손가락을 마사지한 후,
뜨거운 물에 담궈 손가락의 통증을 완화시키는 일이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운동인지라 초보 수준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욕심껏 연습을 하였더니
팔꿈치 통증은 도지고 손가락은 마디마디가 고장이 났다.
마음의 온도와 밀도를 몸이 따라오지 못하여 발생하는 과부하의 현상이다.
몸의 상태를 마음이 외면하는 하는 꼴이라고나 할까.
몸과 마음의 어긋남이다. 역시 out of joint다.
그날의 사달은 엄마의 흰머리 염색에서 시작되었다.
일요일 아침, 눈 뜨자마자 시작된 엄마의 '집에 갈란다'의 반복을 누그러뜨릴 요량으로
쓰다 만 염색약을 찾아와 염색을 해 드렸다.
욕실에 들어가기를 거부한 엄마를 살살 달래어 머리감기까지는 마쳤는데
이미 다 젖어버린 아랫도리 벗기를 완강히 거절하면서부터 문제는 시작되었다.
극도의 거부의사를 표현하며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달아나는 상황은
일촉측발의 위기 그 자체였다. 미끌미끌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은 몸을
겨우 붙잡아 소파에 앉히고 나니 주체할 수 없는 화가 밀려와 엄마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넘어지면 어쩔 뻔했냐고, 왜 그렇게 말을 안 듣냐고,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한 마디까지 덧붙였다.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하면서 왜 그러냐고.
처음 보는 막내딸의 패악에 엄마는 놀라 금세 잠잠해졌고
속옷과 바지를 들고 있는 내게 속수무책으로 하체를 맡겼다.
윗도리와 아랫도리도 구분하지 못하고, 한쪽 발에 두 짝의 양말을 끼우는 갓난아기가 된 엄마가
정신없는 틈바구니에서도 순간순간 본능적으로 챙기고 싶어 하는 여자로서의 자존심과 수치심...
몸이 마음의 절실함을 따라가지 못하고, 어긋난 관절처럼 (out of joint) 마음과 마음이 서로 외면한다.
물에 젖어 좀체로 벗겨지지 않는 속옷을 벗기며 하염없이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차가워진 엄마의 몸뚱어리를 부둥켜안고,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사죄했다.
어떤 자책으로도 스스로의 형편없음과 죄스러움을 씻어내지 못한 내게
다음 기회라는 축복은 호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도록 가슴을 누르는 죄책감이 될 것 같았다.
때때로 누군가에게는 다음은 없.다.
'A rose for Emil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벽 대파밭에서 밀린 새벽오줌을 누듯 (0) | 2022.09.21 |
---|---|
유연하게, 유쾌하게 (0) | 2022.09.15 |
다음의 축복 (0) | 2022.08.23 |
9와 3/4 플랫폼 (0) | 2022.08.08 |
그렇게도 예뻤는데, (0) | 2022.08.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