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과 책 한 권으로 인하여 지난 주말은 깊고도 고요한 기쁨 속에 빠졌었다.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의 잔잔하고도 깊은 흥분.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과 황정은 작가의 《계속해보겠습니다》.
영화는 재개발로 인하여 도시의 변두리 오래된 이층 집인 할아버지 집으로 이사를 온
남매 옥주, 동주와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결핍과 그리움을 내색하지 않는 옥주가 아빠와 고모가 자라 온 이층 집에서 잠시 지내며
크고 작은 일들을 통하여 조금씩 자라는 모습이 '관계와 감정의 사려 깊은 초상화'처럼 그려진다.
꽃과 채소가 섞여있는 무성한 화단에서 동주가 막 따서 옥주에게 건네 준 방울토마토처럼
화려하거나 강렬한 맛은 없지만
장면마다 깊은 공감의 색채와 빛을 발휘해 깊이 매료될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
할아버지가 그랬듯 아빠가 동주의 낮잠을 깨워 시간의 혼돈을 놀리는 장난,
아빠와 고모가 동네 구멍가게 평상에서 주고받는 대화,
모기장 속으로 들어오려는 동주와 자기만의 공간으로 삼으려는 옥주의 옥신각신 장면 등은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우리의 하찮은 일상의 조각들이 바로 소설이고 영화임을 확인하게 된다.
머지않아 요양원으로 갈 할아버지,
몸과 마음이 밭아버렸을 거라 여겼던 그 할아버지가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미련>이라는 노래를 듣는다.
그 모습의 유일한 목격자인 옥주가 뒷꿈치를 들고 할아버지의 그 시간과 공간을 방해하지 않고
비밀리에 공유하는 모습은 할아버지의 처지에 대한 연민과 한 인간의 존엄에 대한 공감의 한 그림이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상실과 통증의 터널을 지나며 성장해 가는 옥주의 모습이다.
영화의 말미, 옥주의 꿈 속에서 엄마를 포함한 온 가족이 행복하게 밥을 먹는 장면은
영화 《오아시스》에서 장애의 몸인 문소리가 두 발로 서서 노래하고 춤추던 꿈속의 장면과 흡사하여
목이 칼칼하게 아파왔다.
사춘기 소녀의 민첩한 자존심으로 꾹꾹 눌러 숨기고 있던 그리움과 애증이 더 이상 내압을 견디지 못하고
꿈의 형상으로 터져 나오는 장면이었다.
"인생의 본질이 허망한 것이라고 세뇌하듯 이야기하는 어머니 애자의 곁에서
소라와 나나는 관계와 사랑, 모성에 대한 깊은 회의를 품고 자란다.
세상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멸종하기를 꿈꾸는 소라와 사랑을 경계하는 나나.
두 사람은 나나의 임신에 당황한다.
사랑의 폐허에서 자란 그녀들에게 임신을 하는 것이나 부모가 된다는 것은 그저 두려운 일일 뿐이다.
세상이 언제 망하든 개의치 않을 것 같던 나나와 소라는
평생 벗어나지 못한 황막한 폐허에서 꽃을 피워 올릴 수 있을까?"
-인터넷 교보문고, 《계속해보겠습니다》 책 소개글-
달이 변화하는 모습의 그림을 표지로 한 《계속해보겠습니다》는
'계속하겠습니다'라는 문장이 마치 격문처럼 자주 반복된다.
소설의 끝 부분에 이르러서는 '계속해보겠습니다'로 바뀌는 이 말은
소라와 나나 자매의 버석거리는 삶을 스스로 지탱해주는 부축처럼 보인다.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전심전력 탓으로 영혼이 망가진 엄마 애자,
사랑에 관해서라면 어느 한쪽이 불시에 사라지더라도 이윽고 괜찮아, 라고 할 수 있을 정도여야 한다며
엄마를 망가뜨린 '전심전력'을 경계하는 소라와 나나,
그 둘과 가족 같은 관계를 이루며 살고 있는 나기,
이들이 외부에 의해 함부로 받은 상처에 저항하는 방식은 비통하지만 가볍지 않고
흔들리지만 결코 비척이지 않는다.
외부의 바람에 그들의 삶은 백지장처럼 창백하게 나부끼는 듯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낭창낭창 유연하며 기존의 가치에 대해 아님 말고, 이다.
좀처럼 우호적이지 못한 세상 속에서
이미 인간과 삶의 덧없음과 하찮음을 알아버렸지만 반복되는 그 삶을 묵묵하게 살아가는 세상의 작은 존재들.
그 덧없음 때문에 인간의 삶을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며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는 그들에게
사랑은 서툴지만 애틋하다.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과 '계속해보겠습니다'라는 말의 반복.
그들을 제외한 세상의 껍데기가 어떤 모양새든, 그들을 어떻게 다루든
그로 인한 적막과 외로움에 나부끼면서도 삶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놓아버리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방식대로 살. 아. 내. 겠. 다. 는 작은 다짐으로 보인다.
"한편 생각합니다.
무의미하다는 것은 나쁜 걸까.
소라와 나나와 나기 오라버니와 순자 아주머니와 아기와 애자까지
모두, 세계의 입장에서는 무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의미에 가까울 정도로 덧없는 존재들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소중하지 않은 걸까, 생각해보면 도무지 그렇지는 않은 것입니다.
아기는 이제 잠잠합니다. 소라도 오라버니도 잠을 자느라고 편안하게 숨 쉬고 있습니다.
모두 잠들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그들의 기척을 듣습니다. 오래지 않아 날이 밝을 것입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 《계속해보겠습니다》, 227, 228쪽-
《남매의 여름밤》과《계속해보겠습니다》,
서로 다른 장르의 두 작품이 주는 위로가 깊은 것은
하찮음의 하찮지 않음을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벼운 나날들도 영화가 되며
내 위축되고 초라한 시간들도 소설이 될 수 있음을 다독여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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