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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se for Emily

플라자 오락실

 

 

 

- 당신, 수고 많았어.

- 아냐, 나도 행복했어. 꽃짐이지 뭐.

 

 

 

이번 추석은 무주 리조트에서 보냈다.

어머님 생신이 추석 무렵이어서

이참 저참하여 20여 명에 달하는 시댁의 온 가족이

일박이일을 같이 지내며

어머님의 팔순 생신을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다.

 

세 번의 식사, 축하 예배, 축하 이벤트,

밤 늦게까지 배꼽이 빠지게 재미났던 게임들.

큰 며느리로서 총 감독이 되어

세세하게 준비했던 여러 순서들 중에서도

가장 마음을 기울였던 것은 어머님께 드릴 특별선물이었다.

내가 맘 먹고 준비한 제법 값 나가는 한 벌의 정장 말고도

나의 남편은 비밀리에 따로 뭔가를 혼자 준비하느라 바빠 보였다.

 

 

애증의 엄마와 아들.

어머님과 나의 남편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다.

서로 가장 맘에 안들어하나 서로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

 

 

선물을 드리는 순서의 끝에

남편이 부스럭거리며 뭔가를 꺼내더니

어머님의 팔목에 팔찌를 채워드렸다.

금팔찌, 열돈.

 

 

 

 

 

 

플라자 오락실.

연애시절, 딱 그 무렵 한창 유행하던 빠.찡.꼬.에 그는 한 때 거의 혼이 팔렸었다.

앵두그림이 넷 쫙 맞춰지면 쫘르르르 쏟아지던 지극의 쾌감의 사운드. 

혼이 빠졌던 그가 대학 등록금까지 털어넣으며 다녔던 오락실 이름이

바로 학교 앞 광장 끄트머리에 있던 plaza 오락실이었다.

그리고 그 때, 어머님의 금팔찌도 비밀리에 희생되었던 걸, 나도 알고 있었다.

 

 

항상 퉁퉁거리는 남편의 의외의 선물에

어머님은 감동하셨고

나는 행여 남편이 뭔가를 고백할까, 가슴이 콩닥거렸지만

결국 '엄마, 오래 살아서 오래 싸우자'외에 사족은 없었다.

 

 

비밀리에 빚을 갚고 있는  

도둑놈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내 오금 아래쪽에서

앵두그림 넷이 쫙 줄을 맞추는 쾌감이 정수리까지 뻗어갔다.

쫘르르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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