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우리 재형이, 그리고 우리 귀한 선이~!!
어수선하고 꺽정스러운 결혼식을 마치고
이제 신혼 여행길에 올랐겠지?
큰 숙제를 마친 홀가분함과 누적된 피로가 밀려오는 아늑한 기분 속에 있겠지?
정말 수고 많았고 애썼다.
살면서 결혼식만큼 큰 중대사이면서 온갖 신경이 곤두서는 일이 또 있을까만은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처럼 타인들의 주목을 받으며 빛나는 주인공이 되는 날이 몇 날이나 있겠니?
최고로 멋진 신랑과 신부가 되었을 거라는 것, 백퍼 확신해.
결혼을 결심하고 날짜를 잡고 상견례를 하고, 집을 구하고...
수많은 과정들을 차례차례 준비하느라 허발나게 힘들었지?
준비과정 속에서 부모로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하면서도
일주일에 겨우 하루 쉬는 화요일 마다 차근차근히 준비하는 너희 둘을 보면서
이제는 정말 마음을 놓아도 되는 독립된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라는 대견함과 든든함을 느꼈단다.
결혼식 날짜가 조금씩 다가오면서
우리 재형이의 양말과 속옷을 정리해서 칸칸이 넣을 때마다,
매트를 취침모드로 맞춰놓고 이불을 정돈하며 잠자리를 살펴놓을 때마다,
아침밥을 챙겨놓고 나올 때마다
아, 이제 이 꽃짐이 주는 즐거움도 끝이구나, 라는 생각에
우울함과 섭섭함이 자꾸만 마음속에 스며들곤 하지만
이제는 다 자란 어엿한 어른이 된다는 기쁨으로 그 섭섭함을 누르곤 했어.
우리 재형이가 장가를 가다니...
어렸을 적 어디 데리고 나가기가 겁나도록
매번 무언가를 사달라고 고집 피우다가 토라져서 겨우 겨우 데리고 다니던
그 떼쟁이가 어른이 되어 이제 가장이 되고 아기 아빠가 된다는 게 웃음이 나올 정도로 안 믿기고 또 대견해.
우리 선이는 막내딸로 자랐기 때문에 딸을 떠나보내는 부모님의 섭섭한 마음이 우리보다 더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
우리 이쁜똥꼬,
엄마 아빠가 얼마나 이뻐하며 정성을 기울이며 키웠는지 알랑가 몰라..
할머니는 나를 보며 ‘새끼 욕심이 너 같은 애는 첨 본다.’라는 말씀을 하곤 하셨었지.
너희들이 유치원을 들어가기 전 어렸을 때는
나의 수업 시간이 두 시간 연강으로 빌 때마다 한 시간이라도 얼굴을 보고 싶어서 후다닥 차를 몰고 집으로 가곤 했었어. 왔다 갔다 하면 얼마 남지도 않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온통 정신이 너희들에게 가 있었던 거지.
주일에 교회에 갔을 때 성도님들이 안아본다고 잠시 너희들을 데려가는 것도 나는 사실 마음속으로 무척 싫어했었어. 잠시 쉴 수 있다는 기쁨보다는 잠시 우리 아기를 안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싫었던 거지.
너를 업었을 때 나의 등짝에 닿던 너의 온기는 내 평생 기억 속의 가장 따뜻한 온도로 남을 거야.
점점 자라 업을 수 없는 몸집이 되고 또 업을 일도 없어진 것을 무척 아쉬워했던 기억이 생생하네.
어찌 엄마만 그랬겠어. 아빠도 마찬가지였지.
기억하지? 우리 똥꼬가 예수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간호사 기록지에 특별 메모가 되어있었던 것을 누군가 전해줬잖아.
(보호자가 환자 곁을 1분도 떠나지 않음.)
우리 선이의 부모님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선이의 성장과정을 보지는 못했지만
지금의 선이의 따스하고 사려 깊은 성품을 보면 다 알 수 있어.
얼마나 정성껏 키우셨는지.
좀 아쉬운 게 있다면
엄마 아빠가 겁나 이뻐하고 쪽쪽 빨아대는 사랑에만 집중했지
야물딱스럽게, 냉혹하게 교육시키는 일에는 마음이 약해서 힘을 다하지 못한 게 사실이야.
좀 더 철저하게 공부 좀 시켰더라면...(지금 같은 고생 안 할 텐데))
좀 더 신앙 교육 확실하게 했더라면...(헐렁한 신앙 때문에 걱정 안 할 텐데))
좀 더 생활교육 야물딱스럽게 시켰더라면...(양말도 안 뒤집어놓고, 식탁도 잘 치우고, 아빠 출근할 때 소파에 누워있지도 않고, 민원도 덜 넣고, 쌈도 안 하고...)
어쨌든
우리 똥꼬와 선이는 일평생 기도로 키우고 또 기도로 도와줄 신앙의 양가 부모님이 계시다는 사실이 얼마나 든든한 일이며 감사한 일인지를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하는 나의 기도 속에 언젠가부터는 선이와 두원베가 포함되면서 아, 선이도 이젠 나의 귀중한 식구구나, 라는 생각을 했지.
재형아,
<빌런> 오픈할 때 엄마가 써 준 편지 기억해?
《카모메 식당》이라는 일본 영화 얘기를 하면서 너무 세상적 성공이라는 욕망에 사로잡혀 일상의 자잘한 진짜 행복을 놓치는 삶 말고, 그 영화 속 식당 주인처럼 삶을 즐기며 누리며 카페를 운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지.
카페 운영뿐만이 아니라
너희 둘의 결혼 생활, 그리고 같이 할 긴 여생,
너무 바쁘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쫓기는 삶 말고 누리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산 정상에 이르는 게 목표라면 그곳에 이르는 길 섶의 작은 꽃들이나 하늘의 푸른 풍경이나 이른 아침의 푸른 공기, 그런 것들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흠뻑 누릴 줄 알아야 그게 바로 성공적인 인생, 행복한 삶인 거지.
우리 인생이 단지 먼지일 뿐이라고,,
인생은 잠시 나온 소풍일 뿐이라고,
인간은 걸어 다니는 그림자일 뿐이라고들 말하지?
그러기에 도시락 싸서 숲 속으로 소풍 나온 것처럼
유연하고 유쾌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재형이와 선이 서로 알뜰히 아끼며,
때로 나의 부족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상대를 긍휼히 여기면서
이해하면서 오누이처럼 다정하게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어.
악바리같이 경직되어 투쟁하듯 살면 금방 지쳐.
행복하기가 힘들어. 그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는 거지.
우리 재형이 연약한 선이를 위해
음쓰도 버려주고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개어주고
서로 많이 도우며 즐겁게 살아라.
사소한 것에서 속이 상하기도 하고 행복해지기도 하고 그러잖아.
이제 결혼했으니 더 깊고 넓어진 마음씀으로
듬직한 남편이 되어야 해.
결혼 전처럼 자주 토라지고 얼굴 표정 굳어있고 하면 아니 되오~!~!
가정 안에서는 ‘멋진 사람’은 필요 없어..
따뜻하고 다정하고 좋은 사람 이어야 해..
서로에게 쉼이 되어야 해..
가정은 지친 배우자에게 가장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해.
서로 편파적인 내 편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엄마, 아빠는 먼 듯, 가까운 듯한 거리에서
항상 후원하며 도울 준비가 되어있으니까
도움이 필요할 때는 바로 손을 내밀도록 하고.
이제 어른이네.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의미야.
선이 부모님은 딸내미 키원 보낸 쓸쓸함이 만만치 않을 거야..
억지로라도 자주 연락드리고 찾아뵘으로써 허전하지 않게 해 드리면 좋겠다.
형제는 마음 쓰지 않으면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어버려.
조금만 더 홍균이 형아에게 신경을 썼으면 좋겠구나.
무엇보다도 교회 열심히 다녀라.
엄마 아빠에게 효도하고 싶으면 신앙생활 열심히 하면 돼.
그것만은 신신당부하고 싶구나.
우리 선이,
우리 선이가 우리 집 며느리여서 너무 좋아.
선이의 엄마, 아빠께서 그러셨듯
(시)엄마, 아빠도 내 딸처럼 따듯하게 아끼며 사랑할게
어려워말고 마음 편안하게 지내자.
선이와 재형이,
우리 귀한 며느리와 아들~!
행복하게 살아라.
엄마 아빠가 정말 아끼고 사랑한다.
신혼여행 만끽하고~!
2021년 5월 28일 결혼식 전날,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