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나만 아는 차이
Tigerlily
2020. 9. 16. 15:55
나의 그림 선생님 시오님은
순전히 창 밖에 있는 나무 한 그루에 반해서 지금의 스튜디오를 결정했다고 했다.
나도 그림을 그리러 가는 월요일마다
양조위와 장만옥이 마음 비척이며 말 없이 걸었을 것 같은 이 골목이 좋아서
그들처럼 한참을 서성이다가 화실의 계단을 올라간다.
두 달 만에 다시 시작한 그림의 첫 피사체는
능소화 앞에 서 있는 엄마였다.
사진을 보며 시작한 얼굴 드로잉은
끝나는 시간인 10시가 되도록 완성이 안 되었다.
시오님은 엄마 얼굴은 그걸로 됐다고
다음 시간에는 나머지 능소화 드로잉에 들어가자 했지만
엄마를 닮지 않은 엄마 그림은 안 그리는만 못하다는 생각에
아무 의미가 없는 그 그림을 그만 중단하고 싶었다.
어디 그림뿐이랴.
나만 아는 차이를 설명하는 것은 때로 고되다.
그래서 구태여 나란히 걷기 보다 때로는
한 발자국 앞 뒤로 간격을 두는 것이 덜 외롭다.
《화양연화》의 그들처럼.
천사도 그렇지만
악마도 디테일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