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홍이 친구
금요일이라는 게 문제였다.
<개훌륭>을 하는 월요일도 아니고, <유키즈 온 더 블록>의 수요일도 아니고,
임영웅을 볼 수 있는 <사랑의 콜센터>의 목요일도 아닌 금요일 밤.
특별히 땡기는 프로가 없어 소파에 널브러져 리모컨으로 내둘 내둘 채널을 탐색하다가
볼.없.이!(볼 게 없을 때는 그래도 EBS가 제일 낫더라), EBS <명의>를 골랐다.
흑색종.
점으로 착각하고 그냥 놔뒀다가는 큰 일 난다는 피부암에 대한 내용이었다.
순간 나의 남편은 웃통을 벗어재꼈고 등짝을 내게 디밀며 사진을 찍어달랬다.
자신의 손을 뒤로 넘겨 닿을 동 말 동하는 딱 그 위치, 오른쪽 날갯죽지 바로 아래에는
쥐눈이콩만 한 검은 점이 하나 있었다.
사실, 이 점이 내게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남편의 등짝을 한 두 번 본 게 아닌 내게, 눈에 띄는 그 점은 재미난 장난거리이기도 했다.
매직펜으로 그 점에 동그라미를 그려서 '점홍이 친구, 점례 사위'라는 점자 돌림의 낙서도 했었다.
다시 본 그 점은 정말 TV에서 말하는 흑색종과 많이 유사했다.
손 끝의 감각으로 가늠만 해 봤던 문제의 그 점을 사진으로 확인한 남편은
점점 말이 없어져갔다. 나도 차차 표정이 굳어져갔다.
'아이고, 별 걱정을 다하시네. 그 점 옛날부터 있었거든.
그게 암이라면 벌써 이 세상 사람 아니겠지. 돈 워리 돈 워리.'
그 밤, 밤새 뒤척인 건 남편이 아니라 나였다.
내 마음속에서 그 점은 이미 흑색종이었다.
거나한 침의 얼룩과 입 냄새가 밴 그의 베개를 끌어안고 눈물을 찍어 바르며 뒤척이는 신파의 밤을 보내고
새벽 어스름이 다가올 때에야 겨우 얕은 잠에 잠깐 빠졌다.
'한 군데만 더 전화해봐, 진짜 한 군데만 더 해보자. 응급실이라도 갈까?'
이눔의 의사 새끼들, 지랄 염병들 까고 있네.
하필 월요일이 임시 공유일로 지정된 연휴의 첫 날인 토요일,
진료를 하는 피부과는 전주 시내에 하나도 없었다..
암이 아니라 불안으로 까만 콩자반처럼 쪼그라든 우리는
토일월 3일을, 겁박당한 소심한 피해자처럼 보내며 차츰 다른 생존법을 찾게 되었다.
검진을 안 하기로 결정을 했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합리화를 해 보니 할 이유가 없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허먼 멜빌의 책 속, 필경사 바틀비처럼 선언하자 공포는 조금씩 잦아들었다.
잦아든 공포는 명치 아래쯤의 어딘가에 약간의 흔적을 숨겨놓았는지
남편은 가끔 긴 팔 원숭이처럼 팔을 뒤로 넘겨 나 몰래
출처모를 연고들을 번갈아 가며 그 점 위에 정성스레 바르곤 했지만
나는 바틀비의 주인 변호사처럼 무심하고도 예의 바르게 못 본 척해줬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잊힌 듯, 잊고 싶은 듯, 안 잊힌 듯,
결국은 잊은 듯 지내며
노년의 삶이 행복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닐 것 같은 이유들을 어렴풋이 이해할 듯싶었다.
그리고 삶은 대체로 불행하다, 라는 어디에선가 본 듯한 경구가
'삶은 대체로 불안하다'로 바꾸면 더 진리로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양성이라네. 조직검사도 할 필요 없대.'
아직 혼자 살기에는 무서운 게 너무 많은 내게,
이제 겨우 '내가 본 남정네 중에 그나마 그가 가장 괜찮은 놈'이라는 깨달음이 온 내게,
몸에 밴 입냄새와 오래 입은 빤스에서 나는 그의 체취도 이제 그럭저럭 견뎌낼 만한 내게,
두 번째 시집을 가기에는 어설프게 늙은 나이의 내게,
어제 오후 남편에게서 받은 문자는
확실한 구원의 할례였다.
다시 군대로 끌려가는 꿈에서 깨어난 머슴아였다.
팡, 팡 불꽃놀이였다.
김연수 작가는 그의 책 《소설가의 일》에서
현대인이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을 견디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했다.
자신의 불안을 온몸으로 껴안을 수 있는 용기,
미래에 대한 헛된 약속에 지금을 희생하지 않을 마음,
다시 말해서
성공이냐, 실패냐를 떠나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태도가 현대인의 최선의 윤리라고 덧붙였다.
흑색종이라는 공포로부터는 가까스로 벗어났지만
이 안도와 평안은 잠시 잠깐의 유예의 은총임을 안다.
색깔과 모양을 종잡을 수 없는 수많은 변종 불안은 이미 예약 완료 상태이며
밀물과 썰물처럼 왔다 갔다 하며 우리를 간 볼 것이다.
'너 소야? 나 최배달이야!'
뿔을 꽉 잡고 파악 한대 쳐서 쇠뿔을 뽀사부리면 된다던
《넘버 3》의 송강호 같은 정면대결도 나쁘진 않겠지만
파도의 움직임에 몸을 맡기고
우리 온몸의 촉수로 삶의 아름다움을 감각하며 살아가는 일이.
뱃멀미를 최소화시키는 방법 아닐까.
흔한 인생을 살아가더라고 흔치 않은 사람이 되는 방법 아닐까.
참고;) 노점홍은 그의 친구, 정점례는 그의 장모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