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늦 여름

Tigerlily 2020. 9. 2. 14:51

 

늦여름이 참 좋다.

 

귀 밑이 설핏 발그레진 말 수 적은 일곱 살 여자아이가 한 입 베어 문

아오리 풋사과의 첫맛처럼 풋풋이 시원한 아침저녁의 바람결,

 

앞 베란다로 들이치는 뙤약볕에 바짝 마른 홑이불에서 나는 고실고실 햇빛 향기와

빨랫줄에 널린 이불속에서 장난치던 어린 시절의 일렁이는 기억의 잔꽃들,

 

서전주 중학교 담벼락을 따라 핀 색색깔의 백일홍과

밤이 깊어질수록 향기가 단단해지는

내 어릴 적 변소 옆에 무더기 무더기 피어있던 달빛 아래의 분꽃 향기,

 

해 질 녘 천변을 따라 걷는 사람들의 그럭저럭 행복할 것 같은 표정과

밤이 되면 한쪽으로만 기울어지는 생각의 깊이와

여름 새벽이 가져다주는 진통제 같은 푸른 위안,

 

개학을 위해 장만한 땡땡이 랩 원피스와

방학 동안 웃 자란 운동장의 잡풀들, 그리고 아이들,

 

그리고 이 맘 때의 최고 풍경,

푸른 하늘과

 

        몽실

              몽실

                     뭉실

                             뭉실

                                     흰

                                          구름

 

늦여름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