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You complete me

Tigerlily 2020. 7. 15. 13:40

 

 

'You complete me.'

 

영화 <제리 맥과이어>에서 탐 크루즈가 르네 젤위거에게 고백하는 이 대사는

조커가 배트맨에게 또 한 번 써먹음으로써 더 유명해졌다.

 

당신은 나를 완벽하게 만들어요, 라는 말은 연인에게 하는 고백으로 더할 나위 없는 표현이겠지만

당신은 나를 채워줍니다,라고 해석해본다면

굳이 사랑하는 남녀의 관계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사용 가능한 표현이다.

여전히 가슴 벅찬 찬사지만.

 

나이 들면서 필요한 것들에 대한 목록들이 차츰 귀에 들어온다.

친구, 돈, 딸, 연대...

심지어 남자들에게 필요한 것들이 1. 아내,  2. 마누라,  3. 애엄마,  4. 집 사람...이라는 말에는

폭소가 터진다.

다 이해가 되는 것들이지만 그중에서도 '연대'라는 말에 특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연결된 끈이 있고 그 안에서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사이이지만

너무 멀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가깝지도 않은 관계,

이해와 관심이 간섭이나 침범으로까지 확장되지 않는 관계,

고요하되 고립되지 않고, 자유롭지만 외롭지 않은 관계,

내가 꿈꾸는 연대이다.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 여럿 있다.

중학교 때의 친구들로 구성되어 격월로 만나는 '질경이'도 있고

영어과 연수를 통해 가까워져 분기별로 만나는 '알로하'도 있고 

내 고향 동산촌을 중심으로 알음알음으로 가까워진 친구들의 모임 '동산촌'도 있고

비 오면 만나 술 한잔 하자해서 붙여진 이름의 '우요일'도 있다.

 

때론 마지못해 참석하기도 한다.

정치색이 달라 목소리를 높인 날에는 토사물을 밟은 듯 비위가 상해

모임 자체가 가치없는 에너지 소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갱년기에 좋은 음식이나 지혜로운 보험 활용법 같은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나름 실용적인 생활의 팁을 얻는 정도로 만족하는 날이 대부분이다.

대체로 몸에 익은 버릇과도 같이 편안한 만남이고 관계이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서걱이고 푸석거려지기 십상인 날들 속에서

말과 마음을 섞으며 비슷하게 늙어가며 낡아가 주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내 삶에 리듬과 물기를 더해주는 뜻밖의 우수리가 되기도 한다. 

도나 레, 잘해봤자 미음 이상 올라가지 않는 건반에서 솔이나 라음이 추가되는 변주곡과도 같다. 

 

엊그제는 '봄' 모임이 있었다.

같이 근무하는 학교 동료 교사 다섯 명으로 구성된 독서모임이다.

Book Or Movie의 이니셜을 따서 BOM이라고 이름 지었지만

생명력과 다정함이 그 계절의 이름만 한 게 있을까 해서 그리 부르게 되었다.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선정하여 같이 읽고 생각을 나누는 게 모임의 주된 활동이지만

가까이 어울려 지내는 것 자체가 깊은 위로이고 즐거움이다. 

알록달록 각각 자신만의 내밀한 색깔을 가지고 있지만 그 물감이 타인의 그림을 번지게 하지는 않는다.

You complete me,  가끔은 내 삶을 채워주기도 한다.

만남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세워보는 소소한 다짐과 계획은 채움을 넘어 세움이 되기도 한다.

따뜻한 단단함과 부드러운 당당함으로 서로의 곁을 내주는 일, 봄날 같은 봄의 연대다.

오래도록 이어가고 싶은 모임이다.

 

때이른 장마로 연일 축축하다.

우요일의 번개팅 문자가 올 만도 한 날이다.

알코올을 핑계한 오늘의 추적추적한 연대를 위해 컨디션 조절에 들어가야겠다.

 

쫀쫀한 연대이든, 느슨한 연대이든

내 남아있는 나날이라는 느티나무에 무성한 잎사귀를 달아주는 덧댐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 이게 언제였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