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엄마의 담박질

Tigerlily 2020. 7. 7. 10:53

 

 

'한 여름에 울 옴마 따습게도 입고 계시네.'

 

퇴근 후 들른 동산촌의 엄마는

양말을 두 개, 바지를 세 개, 윗 옷을 네 개, 입고 계셨다.

손길이 부족한 주간보호센터 선생님들이 엄마의 입성까지는 못 챙기신 듯했다.

죽순 껍질을 벗기듯, 한 겹 한 겹 옷을 벗긴 후

인견 속바지와 난닝구만 남겨 놓았다.

그리고

주먹만한 감자 두 개를 갈고 계란과 부침가루를 넣어

감자전을 부쳐 뜨끈뜨끈하게 엄마께 간식으로 드렸다.

센터에서 이미 저녁식사를 하고 오셨음에도

엄마는 맛나게 드셨다.

 

'맛있다, 하지감자 맛있네, 참 맛있다.'를

열세 번 하셨다.

 

 

 

 

 

언젠가 남편과 어린 시절의 꿈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꿈이 뭐였어?"

"음... 기억이 안 나네. 없었어."

 

뚜렷하게 꿈꿨던 꿈이 없었다는 게 내가 생각해도 이상했지만

사실이다. 나는 되고 싶은 게 없었다.

어쩌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없었던 게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근데, 이런 생각은 했었어.

우리 엄마가 아침마다 담박질을 안 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

우리 오빠 언니들이 학교가기 전 토방에 서서 벌리는 손에 올려 줄 돈을 꾸러

앞집, 옆집으로 고샅을 담박질을 하고 다니셨거든. 그거 안 하게 하고 싶다, 는 생각은 했어.

내가 크면."

 

사십 대에 남편을 잃은 우리 엄마에게 남겨진 네 아들과 두 딸은

엄마를 아침마다 달리게 하셨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되어 봉급을 타는 날마다

흰 봉투 겉면에 '사랑하는 나의 엄마께'라는 한 줄을 써서

엄마께 용돈을 드릴 때마다 내가 먼저 느꼈던 기쁨은 그래서인지 남달랐다.

 

 

수도 없이 옷을 껴입고

정말 맛있어서인지, 맛있다는 말을 한 것을 잊어버리셔서인지

자동 반복처럼 되뇌는 엄마의 표현을 들으며

 

어쩌면 우리 엄마 인생의 말년에 찾아온 망각의 병, 치매는

엄마에게 축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생에서의 신산한 기억들을 말갛게 삭제해버리고

새로 태어난 것처럼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숲 길을 향해 가는 소풍처럼

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 않은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