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몇 번이라도 좋다

Tigerlily 2020. 5. 28. 12:57

 

음력 4월이 한 달 더 있는 윤달이다.

윤달은 날짜상의 계절과 실제의 계절이 어긋나는 것을 막기 위해 덤으로 끼워 넣어진 여분의 달이다.

"하늘과 땅의 신이 사람들에 대한 감시를 쉬는 때로 불경스러운 짓을 해도 신의 벌을 피할 수 있다"라고 믿었기에

이장이나 수의 마련과 같은 '흉하다'라고 생각하는 일 등을 윤달에 한다고 한다.

 

 

니체, 파울 레 그리고 채찍을 들고 있는 루 살로메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생이여!"

라는 니체의 유명한 말은 그의 저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온다.

 

그의 이 책은 루 살로메로부터 버림받은 후 충격과 분노에 휩싸여 극도의 고통에 시달리다가

영감을 얻어 열흘 만에 저술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기본 사상이라는 영원회귀란

삶의 매순간과 모든 순간이 조금도 바뀌지 않은 채 무한히 되풀이되는 것을 뜻한다.

정신착란과 광기 속에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가 생을 마감했던 그의 불행한 삶의 원인이

지극히 사랑했던 여인, 루 살로메로부터 당한 배신과 실연이라고 볼 때

그의 이 멋진 절규는 알고 보면 참 처절하다.

결코 되풀이 하고 싶지 않을 것 같은 사랑의 궤적을 몇 번이라도 좋다니,

니체야말로 진정한 사랑꾼이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니체가 희대의 팜프파탈 루 살로메를 처음 만난 날의 오글멘트도 유명하다.

'우리는 어느 별에서 떨어져 오늘 여기서 만나게 된 걸까요?'

 

파울 레, 니체, 릴케, 안드레아스, 프로이트... 당대 최고의 지성들이 그녀에게 그랬던 것처럼 

루 살로메를 보자 마자 사랑에 빠졌던 니체는

친구 파울 레와 그녀를 공유하는 조건의 기이한 동거라도 수락하는 맹목의 선택도 마다하지 않는다.

역시 당대 최고의 지성이었으며 빼어난 미모와 매력을 지녔던 그녀는

다가오는 사랑을 허락하되 누구에게도 속박되기를 원치 않았던 독특한 기질로 인해

만나는 남자마다 그녀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삶이 탈진되는 열병에 시달리게 했다.

니체, 릴케, 프로이트의 경우에서처럼 결과적으로는 뛰어난 걸작을 만들어내는 아이러니를 낳기도 했지만. 

루, 레, 니체의 동거는 루와 레가 니체를 따돌리고 도망감으로써 끝나버렸지만

결국 루가 결혼한 사람은 또 다른 남자 동양학자 안드레아스였다. 그 이후에도 릴케, 프로이트로 계속 이어졌지만.

 

하여간 빛나는 철학적 업적을 제외하고는

우리의 니체님의 삶이 피폐의 나락에서 헤매다가 불행하게 삶을 마감하게 된 것은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여자 루 살로메 때문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 그의 삶을

똑같이 다시 반복하고 싶다고, 몇번이라도 좋다고 했다니

지독한 중독의 힘이다.

 

사랑,  그 놈!

루 살로메 그 년!

 

윤달에 떠올려본

니체와, 영원회귀와, 사랑의 치명적 중독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