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남은 건 볼품없지만

Tigerlily 2020. 4. 22. 09:46






"언젠가 우리 생을 뒤돌아 보면,

이 저녁은 참 아름다운 한 때의 그림으로 기억될 것 같아."


코로나 덕분에 거의 날마다 천변산책을 하고 있다.


뉘엿뉘엿 해가 지는 봄 저녁의 연한 바람 

다 져버린 벚꽃 대신 뾰족뾰족 돋아나는 연두색 버드나무 새순들,

상승의 기대도 없지만, 

추락조차도 삶의 한 부분으로 여기게 될만큼의 보풀과 그늘을 맛 본 걸음걸이,

또 일 년이 지나면 다시 올 봄을 기다릴만큼의 적절한 나이 듦.


현재의 무료하다 싶을만치의 평범한 날들이, 과거가 될 미래에는

마음 속에서 그윽하게 그리워할 한 시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다행이다.

시점에 따라 현상이 달리 자리매김되어질 수 있다는 것은.

자다깨다하는 질 떨어지는 수면의 밤의 생각들은 얼마나 암울하고 칙칙하던가

하지만 아침의 햇살에 세척된 밤의 그것들은 별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시간에 의해 탈색되기도 하고

세월에 의해 윤색되기도 하는 우리의 기억들은

그래서 도려내어질 수 없는 그 기억의 무게에 의해 헉헉대지 않아도 된다.

 

그냥 가만히 두면 된다.

함부로 쏜 화살이 되었든,

황홀로 넘치던 기억이 되었든.

내 영혼이 온통 휘청거리도록 흔들만큼의 그 괴력이 다 빠져나가는

과거가 되는 어느 시점에는

물 없는 화병 속의 냉이꽃처럼 한낱 무력한 기억의 조각이 되고 말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