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목욕탕 연가

Tigerlily 2020. 4. 7. 13:28



어제는 엄마와 목욕탕에 갔다.

함께 공중목욕탕 가기는 혼자 사시는 치매 엄마를 위해 하는 몇가지 일들 중에

'이게 바로 효도지.'라는 생각이 드는 셀프만족감 단연 최고의 항목이다.

아니나 다를까, 옷을 벗기는데 엄마는 속옷과 내복을 슈퍼맨 스타일로 입고 계셨다.

막내야, 지구를 부탁하노라, 오마니 걱정은 하지 마세요.

바지위에 팬티입고 오늘도 난 길을 나서네, 오마니 망토는 하고 가야죠
아뿔싸 어쩐지 허전하더라 파란타이즈에 빨간 팬티는 내 차밍 포인트 


마치 처음 목욕탕에 온 것처럼 엄마는 '남사스럽게 어떻게 깨를 벗냐' 하셨지만

온탕에 담궈놓고 때를 불리는 동안 바나나 요구르트에 빨대 꽂아 드리니 

포동포동 살 오른 네살짜리 여자 아이처럼 발그레 천진난만 행복해하셨다.





부엌, 소여물을 쑤는 커다란 무쇠솥 아궁이 앞,

빨강색 대형 다라이 속에서 한 달에 한번이나 날 잡아 묵은 때를 벗기던 촌년, 나에게

최초의 대중목욕탕은 중앙시장 근처의 <거북탕>이었다.

아차, 국민학교 때 학기초마다 각 가정의 재산이랄 수 있는 티비, 라디오 따위의 유무를 조사하는

이상한 나라에 나는 살았는데, 그 때 나는 목욕탕에다 동그라미를 쳤었다. 어쨌거나 빨강 다라이도 내겐 소중한 목욕탕이었으니까.

하여간,

최초의 대중목욕탕 나들이에서 나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체모, 체모, 아줌마들 앞섭의 시꺼먼 체모들이었다.

정말이지 그 때까지 어른의 벗은 몸을 볼 기회가 없었던 내게

그 광경은 삶의 적나라한 치부를 전람해 놓은 곳에 너무 일찍 끌려 온 느낌이어서 

한참이나 따뜻한 물에 거품을 풀어서 내 마음을 잘 다독여야했다. 이럴수는 없어. 이런 세상이라니... ㅠㅠ 



사실, 나는 목욕탕 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목욕 후의 묵은 때를 덜어 낸 포송한 피부와

그 이튿날까지 남아있는 목욕탕의 따듯한 비누냄새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뜨거운 물 속에 몸을 담그는 것이나 사우나 속의 숨 막히는 습기를 버텨내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뿌연 김 사이로 발가벗고 활보하는 여자들의 천태만상을 곁눈질로 훔쳐보는 것은 여간한 재미가 아니다.

신도 참 공평하시지, 저렇게 쭉쭉 뻗은 몸매에 저 납작한 가슴은 웬 인류애람,

오또카지, 저 불룩한 배통에 또 쪽쪽 빨고 있는 냉커피 한 통이라니,

저건 아니지, 너무 티나잖아, 저 깡마른 몸에 페르세포네의 수박 가슴이라니..


'제가 덩치는 작아도, 때가 좀 많아요, 겁나 나올텐데...어쩐뎅...혼자 해도 되는뎅...'

어쩌다 만나는 옆에 앉은 곰같은 덩치녀가 나의 등짝을 밀어준다고 친절하게 덤빌 때는

슈렉의 손 아귀 안에서 발발 떠는 엄지공주처럼 나는, 순간 공포에 떨기도 한다.

한 두 번의 왕복에 내 작은 등짝의 때가 순삭되는 그 자비로운 넓은 손길은

가끔 필살기의 무기로 쓰일 수도 있겠구나, 싶으니. <미저리>의 케시 베이츠처럼...


덧붙이자면,

내가 꿈꾼 목욕탕에 대한 유일한 로망은

매일 사우나에서 땀을 빼는 한가한 아줌마 단골들만의 혜택이었던,

구멍이 숭숭 뚫린 프라스틱 목욕가방 가득 온갖 목욕용품을 한 살림 빼곡히 담아

라커의 맨 위 공간에 올려 놓은 것이었다.

어쩌면 내성적인 육체를 가진 내게

목욕탕을 드나드는 행위란 뒷걸음질로 들어가서 후딱 해치우고 나오는 소심한 행동이었기에

꿈 꾼 소박한 로망이 아니었나 싶다.







나무 평상에 앉힌 후 발톱을 깍아드리고 면봉으로 귓속 청소를 해 드리니

엄마는 '개안허고 좋네.'를 연발하셨고

바지 위에 빨간 팬티를 다시 고집하시는 엄마의 챠밍포인트를 다시 복원 시켜드림으로써

지구를 부탁드리며 우리의 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