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Tigerlily 2019. 12. 24. 15:32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이순신 장군이 적의 총탄에 맞아 죽어가면서 마지막으로 한 말이라고 한다.

장군의 유언답지만,

'안 알린다고 안 알려지는 것이간디....'라는 생각이 든다.


금방 티나거등~







"나의 폐경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나도 드디어, 경수가 끊긴 것 같다.

사십 후반대에 이미 폐경을 맞은 친구도 허다한 판에

평균보다 훨씬 늦은 나이까지 검은 봉다리에 생리대를 사다 나르는 일은

근천스러운 일이어서 섭섭하기보다는 편하고 개운할 따름이다.


몇 년 전, 나보다 두 세살 많은 나이의 아줌마들과 수다를 떨던 중

갱년기와 폐경에 대한 여러가지 유용한 팁을 전수받은 일이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오만원짜리 비타민 D 주사를 맞아라,

건자두가 의외로 여성 홀몬 유지에 효과적이다,

죽자사자 쉬지 말고 걷기 운동을 해라...

잡다한 꿀팁의 막바지에 씁쓸한 고백같은 조언 하나가 이어졌다.

'어떤 여자들은 폐경의 사실을 남편한테 비밀로 한다네.'


열등해진 육체를 이보다 슬프게 표현한 말이 있을까...







폐경이 어찌 몸의 한 구멍에서 흘러나오던 피가 그치는 물리적 변화만 의미하겠는가.


꽃단추를 달아주지 않아도,

꿈의 가장자리에 레이스를 수 놓지 않아도, 자체로 브라보였던 젊음의 날들이 서서히 지나고

살이 발려져 가시만 남은 보리굴비처럼 초라함이 허옇게 배통를 드러내는 나이가 되면

마음의 구멍이 먼저 막혀 버석거리기 시작한다. 붉게 달아오르는 간헐적 열감과 질 낮은 수면처럼.

그리하여 마음을 단속할 일이 많아진다.

내가 나를 안아줘야할 일들이 늘어난다.



나보다 몇 계단 높이 올라 가 있는 동년배의 예의바른 말투와

어린 후배들의 눈부신 웃음소리 사이에서

쪼그라든 유방 위에 겨우 살아남은 검은 젖꼭지처럼 자존감 대신 자의식만 바짝 예민해져가는 나이,

어설프게 나이들어가는 지금이다.

감춰도 twinkle, 빛이 나던 시절은 지나간지 오래고 아무리 잘해봤자 꼰대 면하기 쉽지 않다보니

나잇값의 강박이 만만치 않다. 차츰 마음의 뒷방으로 뒷걸음질 쳐 간다.


그.러.하.니.

부하 병사들의 조동아리를 틀어막아 아무리 나의 폐경을 적에게 비밀로 붙인다 하여도 

어설픈 위장(僞裝)이 뽀록 안 날 리가 없다.

시어머니의 독한 잔소리를 들은 며느리가 정짓간에서 만난 애먼 개새끼를 부지깽이로 패는 그 내성적인 몽니를

시아버지가 눈치 못 챌리가 없다는 것이다.  다 티가 난다.


삐걱대는 것은 낡아가는 육체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른이지만 여전히 쉬이 어른이 되지 못하는 내 안의 어른 아이의 실체와

어른인척 어른다워야할 것 같은, 타인이 기대하는 인격의 페르소나 사이에서

'찬사가 없어도 이를 수 있는 자족'이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칠게 읽은 책, 『커튼』에서 밀란 쿤데라는 우리의 삶을 시적인 삶과 산문적인 삶으로 구분했다.

낭만과 아름다움만 있는 세계로 묘사된, 커튼으로 보호된 시적인 삶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허구일 뿐

찢어진 커튼 사이로 보이는 세상이 삶의 실체라는 것이다.

젊은 시절이 서정적이고 시적인 시절이었다고 한다면 그 이후의 시기는 산문적인 시기가 아닐까.

삶의 고통스러움과 통속적인 측면이 여실히 나타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 이면에 그 때까지는 무시되었던 아름다움이 비로소 드러나는 산문의 특성, 그게 50대 이후의 삶의 이야기와

닮았다고 위로해 본다면 쿤데라님도 이해해 주시겠지?


돈키호테의 이가 빠지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우리의 실존이라는 쿤데라의 설명이

완경의 기념으로 남편으로부터 받은 백만원보다 훨씬 따뜻한 오후이다.


오후의 창으로 들어오는 한 소끔 이울어진 겨울의 햇살,

내 낡아가는 삶도 한 편의 산문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 이 또한 나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