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아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지만,
교회 설립 30주년 기념행사의 여러 이벤트 중에서
나는 '신문 발간'을 맡았다.
거의 한 달 정도 낑낑대다가
지난 금요일 모든 원고를 인쇄소에 넘기고
수고한 나를 토닥이기 위해 혼자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얼굴을 아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지만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영화 속 영지샘이 칠판에 쓴 한자어이다.
내가 알아볼 수 있는 몇몇 얼굴들이 떠올랐고
그리고, '내가 안다고 할 수 있는 마음'과 '내 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에 대해
아주 잠시 생각해봤다. 쪼르르 눈물이 나왔다, 가을 맞나 보다.
눈물도 많고 웃음도 많은 손흥민이 참 좋다.
한계를 넘는 수준의 육체적 훈련과 치열한 경쟁
절제, 외로움 따위의 거친 자신과의 사투로 가득할 그의 삶에서
그런 함박 미소와 말랑말랑한 감성을 곱게 길어올릴 줄 아는 그가 참 이쁘다.
그런 그가 몇 일전 에버튼과의 원정경기에서 큰 일을 겪었다.
그가 한 백태클로 인하여 상대편 안드레 고메즈 선수가 발목에 끔찍한 부상을 당하게 된 것이다.
머리를 감싸쥐며 눈물 흘리며 괴로워하는 그의 사진이 신문마다 실렸고
심리치료를 받아야할 정도의 심리적 충격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사건 이후 열린 즈베즈다팀과의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그는 2점의 멀티골을 넣으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 날 그가 넣은 득점의 숫자보다 마음이 저릿했던 것은
첫 골 득점 후 그가 보여준 독특한 골세리머니였다.
평소의 유쾌하고 장난기 가득한 세리머니 대신 그는
카메라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이는 사과 세리머니를 보여주었다.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가득 찬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숙이는 그의 몸짓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심한 부상을 당한 고메즈 선수를 향한 진심어린 사과였다.
영어 단어 smypathy와 empathy는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르다.
언젠가 티비 프로그램에 출연한 안철수씨가 명쾌하게 설명해 준 적도 있지만
smypathy가 상대의 아픔을 머리로 이해하는 동정의 수준에서 머문다면
실제 그 아픔을 내 마음으로 느끼고 함께 아파하는 수준의 공감은 empathy이다.
적팀의 불운에 혼비백산의 표정으로 어찌할 바 몰라하던 손흥민에게서 느껴지는
empathy의 깊음으로 인해 그가 평소 보여주던 해맑은 미소가 더 반짝거려 보였다.
영화의 제목이 <벌새>인 이유를 늦게야 깨달았다.
벌처럼 작은 새 벌새는 그 작은 몸으로 쉼없는 날개짓을 해대지만
그가 바라보는 시선의 영역은 자기 작은 몸뚱아리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내가 그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