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gerlily
2019. 10. 25. 14:24
개인적으로,
사소하지만 즐거운 일 중의 하나는
자라난 손톱을 깎는 일이다.
신문지를 깔아놓고 빨간 단풍잎처럼 손을 쫙 펼치면
첫 애인의 열손가락을 정성껏 빨아주듯 나의 남편은 또각또각 나의 손톱을 잘라준다.
거칠게 잘려진 싸이드를 쓱쓱 갈아주는 야스리 작업까지 끝나면
행복해 죽겠다,는 표현으로 나는 말하곤한다.
'아, 손가락이 28개라면 좋겠다.'
자라난 손톱을 볼 때마다
나의 생명이 팔닥팔닥 살아있다는 증거로,
내가 삼킨 시간이 배설되지 않고
내 안에서 자라난 증거로,
가시적으로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이만한 게 또 있을까싶은 생각이 든다.
잠들기 직전 항상 혼자 읊조린다.
'오늘 하루의 문을 닫습니다.'
늙어가는지
요즘은 그 말이 내 마음에서 잠시, 쿵쿵 소리를 낸다.
'다시 오지 않을' 이라는 진부한 어휘를 맨 앞에 붙여 보기도 하고.
언젠가는 꼭 한 번 하게 될 말,
'이제 내 인생의 문을 닫습니다'라는 말로
바꾸어 연습을 해 보기도 한다.
그리고
내 안에 지렁이가 사는것처럼 마음의 사용이 형편없었던 날의, 그런 밤에는
어쩌면 나는 탑골공원의 회색 노인들처럼
한 개도 철이 안 든 채로 그냥저냥 덜컥 죽음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이르기도한다
내 안에서 기름진 시간의 양분을 섭취하며 꼼꼼하게 자라나고 있는 것이
또각또각 연분홍색 손톱 외에는
퉁퉁 불은 뱃살같은 아집과
수십번의 설득 후에도 다시 원위치에 가 있는,
여간해선 세워지지 않는 배배꼬인 마음의 포대자루가 아닐까 무섭기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