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한 모퉁이를 채워주었던
'니 사무실 근처 지나가는데 얼굴 한 번 보자.
퇴근 무렵에 전화가 와서 학교 앞 커피숍에서 차를 마셨다.
맥시멈 30분 밖에 시간을 낼 수 없다,는 싸가지 없는 나의 말에도
감지덕지,라고 웃는 그는 한 때
비 내리는 날에는 여지없이 만나 알콜에 절어보자는 <雨요일> 모임의 핵심멤버였다.
나이들어가며 만남이 뜸해지더니 일 년에 한 두번 신년회겸 송년회로 굳어져가고 있는 현실에
처음에는 모임을 채근하지 않는 상대의 무관심에 섭섭한 마음도 없지 않았으나,
차츰, 슬며시 성의없이 꺼내는 모임 제안에 대꾸를 안함으로 그 따위의 제안에 움직일 내가 아니라는
귀찮음을 역력히 나타내는 평안의 단계에 이르렀다.
만남이 뜸해진 이유는 간단하다.
마음이 식었기 때문이다.
함께여서 행복했던 시간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세상의 어느 법정에서건 너를 위해 변호해주리라던 과장된 애정으로 들썩이기도 했던 나날은
지.나.간.다.
희자는
나의 울퉁불퉁했던 사춘기 시절을 아주 가까이서 같이 보내준 친구였다.
돌이켜보건데 처음으로 묵직한 존중과 마음 깊은 배려, 살가운 다정함을 함께 나눈 처음 사람이었던 것 같다.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는 서로의 약한 부분들을 우리는 말하지 않고 서로 다독이는 법을 알았던 것 같다.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한자 표현을 들을라치면, 우습게도
하염없이 눈이 내리던 겨울 방학,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고 용정리 희자네 집을 찾아 혼자서 무작정 걸어갔던 어느 겨울 날이 삽화처럼 항상 떠오른다.
책가방에서 손톱깎이를 꺼내 내 거칠었던 손톱의 가장자리를 다듬어 주던, 그녀가 내게 처음 말을 걸던 날의 햇살도.
하지만 그렇게 영.원.할. 것. 같.던. 희자와의 관계는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이상하리만치 멀어져버렸다.
어른이 되어 연락이 닿아 다시 만난 희자는 당당하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 지역에서 유명한 사업장의 사장이 되어 있었고. <소녀시대> 태연의 엄마가 되어있었다.
함께하지 못한 긴 시간이 만들어낸 거리를 옛 우정이 완벽하게 좁혀줄 수는 없는 것이기에
어쩌다 한 번씩 전화로 마음을 두드려보는 그녀와 내가 되었지만 그럴 때마다
그 시절 우리가 잡았던 손길의 깊은 온기가 되살아나 먹먹한 쓸쓸함이 밀려온다.
얼마 전 나의 책을 희자에게 보내주었다.
책이 나오면 제일 먼저 보내주고 싶었던 사람 중의 하나였다.
나의 일처럼 기뻐해주었다.
낡은 표현이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
"17살때는 사랑에 빠져 그녀를 위해 죽을수도 있었어. 그런데 2년이 지나니 이름도 기억나지 않더군"
영화 <그랑블루>에 나오는 대사이다.
영원히 변치 않을 것 같던 마음, 관계도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느슨해지고, 희미해지고, 결국에는 변한다.
한 철, 내 삶의 모퉁이를 넘치도록 흥건히 채워주었던 감정들, 사람들.
멀어지면서 간혹 섭섭함과 분노, 때로 그리움의 흔적들이 일렁이는 나날도 있었지만
하지만,
한 시절 내 삶의 한 모퉁이에서 같이 숨쉬며, 나를 황홀하게 가득 채워주었던 시간들의 가장자리에
곱고도 자잘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들국화 꽃잎들을 수놓아 주고 싶다.
고마웠노라고, 가끔 따뜻하게 꺼내보는 기억이라고
그대 때문에 말을 줄여가며 소리내지 않고 웃는 웃음소리를 배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