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맛 껌
신혼 초 우리 부부의 다툼의 주제는 거의 동일했다.
남편의 일관된 주장은 자신을 '존경'해달라는 것이었다.
어처구니 없는 그의 요구에 대한 나의 대답도 항상 동일했다.
'존경은 곤란해. 사랑이라면 모를까'
어떻게 똥구녁까지 다 들춰본 사람을 존경할 수가 있단말인가.
까발린 궁댕이를 찰싹 쎄려주며 이뻐라, 이뻐라 해 줄 수는 있어도 말이다.
"언제나 프랑스 영화를 보면서 영감을 받고 있다.
어린시절부터 나에게 큰 영감을 준 앙리 조루즈 클루조, 클로드 샤브롤 두 분께 감사드린다"
봉준호 감독이 칸느영화제 시상식에서 소감으로 한 말의 일부이다.
발음도 어려운 그 두 어르신의 이름을 들어 본 적도, 그들의 영화를 접해 본 적도 없기에
다소 그들만의 은어를 듣는 느낌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견디게 하는 아름다움을 목도하는 느낌이었다.
'Pay Forward'라는 표현처럼
내가 입은 은혜와 사랑을 당사자가 아닌 또 다른 이에게 베푸는 선의로 대신 갚아가는 느낌이랄까.
사랑의 감정은 기울인 마음에 대한 보상의 심리가 있기에
상대로부터 직접적인 반응을 받을 수 없을 경우, 지친다.
하지만 '존경'은 그 대상이 심지어 나의 존재조차도 알아주지 못한다할지라도
그가 이 세상 모퉁이 어딘가에 있음으로도 충분히 내 삶의 길라잡이가 될 수 있다.
부대끼지 않을 안전한 거리, 객관적 거리두기가 가능한 대상이기에 가능한 말일 수도 있다.
기어코 받아내야할 감정의 빚이 없는 존재이기에 가능하다.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이라는 책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떤 유명세계영화제에 참여하여 우연히 만난 허우샤오셴 감독과의 짧은 일화를 얘기했다.
평소에 무척 존경하고 흠모해 왔던 그를 거리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재미나게도 허우샤우센 감독은 그에게 과일맛 껌을 사줬단다.
그는 그가 사준 그 껌을 차마 먹을 수가 없어서
소중히 호텔방으로 가져와 사진을 찍어두었다는 추억을 말했다.
홀딱 홀딱 쉽게 반하곤 하는 지병 때문에 잠시 마음을 빼앗겼던 대상은 많이 있지만
아쉽게도 존경했던 사람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사랑 말고,
그런 요사스런 감정 말고,
봉준호, 히로카즈 감독의 그들처럼
내 삶을 묵직하게 지배해버리는 마는,
그만 두 손을 들고 즐겁게 항복항복 백기를 들어버리고 말게 될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든다.
과일 맛 껌을 건네 받고,
손 안의 땀에 반쯤은 녹아버릴만큼 차마 놓치 못할
그런 누군가가 이 행성 어딘가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