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니미럴

Tigerlily 2019. 5. 28. 14:36



"당뇨가 감기야?"

영화 <우아한 세계>에서 초라한 삼류 건달 송강호가 의사에게 소리치며 하는 말이다.

혹시나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함 속에 검사를 마친 그에게

의사가 무뚝뚝하게 던진 한마디는 "당뇨가 오셨네요."

당황한 송강호는 "뭐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이라던가 어떻게 해야 한다던가 그런 얘기는 없느냐"고 묻자

의사는 계속 차트만 뒤적이며 사무적인 말투로 "밖에 나가면 간호사가 알려줄 겁니다"라고 답한다.

이에 그가 버럭 소리치며 한 말이 그것이다.



지난 월요일 부인과 정기검진을 받았다.

의례적인 암검사에 덧붙여 추가 비용을 내고 난소암 검사까지 했다.

한참을 뒤적뒤적하던 나이든 남자 의사는 입구쯤에 작은 종양이 있다고 떼어 보여주며

조직검사를 해 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빠짝 쫄아 눈에 힘이 잔뜩 들어있는 나와 다시 책상을 사이로 마주한 의사는

별 것 아닐 거라며, 빠르면 목요일, 늦어도 금요일에는 결과가 나올거라고 했다.

그리고는  컴퓨터 모니터의 모가지를 내게 돌려주며 이백이 넘는 비용이 드는 질 레이저 수술을 권했다.

갱년기의 모든 부작용을 단칼에 해결해 주며 이십분이면 끝난다고 '온 김에 하고 가시라고' 덧붙였다.

암이면 끝장나는 마당에 성능은 무슨 우라질~!



삼 사일을 사색이 되어 보냈다.

누구에게도 말도 못하고, 끙끙대며 과묵하신 우리 하나님께만 매달렸다.

생각나는 모든 죄를 그러모아 백배사죄하며 있는대로 서원를 했다.

'살려주시면 천사같이 살게요,  헌금도 많이 할게요,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게요, 이상없음으로 나오게 해주세요.'

피 말리는  목, 금요일을 보내며 금요일 저녁 병원 문닫을 시간인 6시에 덜덜 떨며 전화를 했다.

'늦어도 토요일까지는 연락이 갈거에요, 기다려보세요'

나의 이름도 묻지 않고 간호사는 전화를 끊었다.

토요일에 다시 전화를 건 내게 간호사는 또 내 이름도 묻지 않고 말했다.

'연락이 안 갔나요? 그럼 이상이 없는 것일거에요. 근데, 레이저 수술은 생각없으신가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인간에 대한 예의, 존엄에 대한 이야기라고 감독은 말했다.

심사위원 만장일치의 수상의 원인에 대해 묻는 질문에

한 기자는 여러 요인과 더불어 영화 자막에 대한 얘기를 덧붙였다.


"자막 작업을 달시 피켓이라는 들꽃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이신 분이 했어요.

 한국 영화 일을 하시는 미국 영화인인데 굉장히 자막을 잘하셨더라고요.

한국특유의 문화적 배경이 있어야만 웃을 수 있는 포인트에서

객석에 앉은 외국의 관객들이 거의 놓치지 않고  다 웃더라고요."


웃음의 포인트에 정확히 터뜨려주는 파안대소,

타인의 고통에 냉소하지 않는 고분고분한 선의...


내 감정의 말귀를 알아들어주는 정확한 자막처리는

영화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닐게다.

 


인간이 가진 태생적 한계는

타인의 슬픔에 대해 어느 누구도 똑 같은 정도로는 느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근원적 무능력이고 슬픔임을 알고는 있지만

존엄까지는 아니어도

감정에 대한 예의없음, 아니 버르장머리 없는 냉담의 풍경들을 목도할라치면

나도 모르게 송강호를 흉내내어 패악을 부리고 싶을 때가 있다.


"니미럴, 암이 감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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