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정확하게 사랑받고 싶었어

Tigerlily 2019. 3. 18. 15:46




거실의 엘이디 전등이 몽땅 나갔다.

밥도 먹고, 성질도 내고, 졸기도 하고, 발톱도 깎고, 화장도 하고, 흉도 보고

젖은 휴지처럼 널부러져 티비도 보던 공간에 적막이 들어 앉았다.



대신 주방의 식탁에 앉아 일요일의 저녁과 밤을 보냈다.

시간이 세 배는 많아진 것 같았고.

집 안의 어둑어둑해진 적막은 무척 아늑했다.

할 일이 없어서 책을 읽었다.



"정확하게 사랑받고 싶었어

부족한 알몸이 부끄러웠어

안을까 봐

안길까봐

했던 말을 또 했어"


신형철의 책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 인용된 장승리라는 시인의 <말>이라는 시의 일부이다.

정확하게 사랑받고 싶었어, 라는 구절은

내가 사랑하며 슬펐던 이유가 무엇이었는가를 비로소 깨닫게 해주었다.








출간이랍시고 책을 돌리고 나니

개폼치고 너무 큰 개폼이 잡아지고 말았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은 늘 작가보다 더 많이 말하는 법이라고 하던데

겉멋 한 번 흐드러지게 잡게 된 것이다.

하지만 모든 칭찬이 즐거운 것은 아니다.



참 대단하세요, 글을 참 잘 쓰시네요, 라는 모호한 칭찬보다는

조르바를 읽었지만 그런 구절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참 눈빛이 다르군요,

잘 다듬어진 대파같아,

그림들이 참 살갑네요,

71쪽 영시 해석 좀 부탁해요, 같은

섬세한 반응이 좋았다.



"어설픈 작가만이 정확하지 않은 칭찬에도 웃는다

진지한 예술가들은 정확하지 않은 칭찬을 받는 순간 자신이 실패했다고 느낄 것이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신형철이 한 말이다.


정확하게 사랑받고 싶은 걸 보니,

정확하지 않은 칭찬에 입이 삐죽거려지는 걸 보니,

나도 진지한 예술가의 폼을 잡고 싶은 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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