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큰 사랑의 말들은 들리지 않네
-어쨌든 이 세상에 태어나
이 얼굴과 이 이름으로 만나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관계를 맺어왔다.
좋아하고 미워하고, 운이 좋은지 사랑한다는 말도 여러 번 들었고
물론 죽이고 싶도록 나를 싫어하는 이도 만났다.
귀가 어두워 관심을 쓰지 않으면 많은 소리를 놓치고 살지만
말보다 활자를 좋아해 끊임없이 수많은 당신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글은 소리만큼 힘이 세다. 단어는 짧아도 크다. 문자는 뼈와 살에 새겨진다.
스무 살 이후 크고 강하고 힘센 문장으로 쓴 편지를 받았는데
아직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세 개의 문장이 있다.
'너는 나의 신탁이다, 넌 나의 로또, 너는 나의 우주야!'
너무 큰 말들이다.
말에 걸려 넘어지고 글로 사는 문자적 인간에게 당도한 그 큰 말들은
아직도 그 첫 발화자인 사람들과 풀어야 할 옹이 진 매듭이 되었다.
....
아직도 좋종 그 말들이 엉킨 매듭에 침을 묻혀 만져본다.
글자로는 터무니없이 기뻤으나 너무 의미가 커서 안 들리는 것처럼
이해할 수 없었던 말들을 보내왔던 그들과는 현재도 근근이 관계가 이어지고 있으니,
그런데 그때 어떤 답장을 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않는다.
- 6,22일자 한겨레신문, 권혁란의 관계의 맛, 일부-
'우리 엄마는 아마 천 명에 한 명 있을까말까할 정도로 키가 작아요.
제가 안아드리면 품에 쏙 들어오고도 남거든요. 근데 우리 아부지는 항상 말씀하시길,
야, 니 엄마가 어때서, 내 눈에는 이쁘기만하다야, 하셔요. ㅎㅎ
근데요, 저도 그렇더라고요.
우리 각시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못생겼다, 남자같다, 라고들 하는데
제 눈에는 이상하게도 그렇게 안보여요, 이뻐요, 참 이뻐요'
퇴근 길에 계단에서 마주 친 교감샘이 무슨 얘기 끝에 수줍어하며 하신 말씀이다.
'참 이뻐요'
크지 않아서 너무나도 잘 들리는 말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 차 안 라디오에서
우연히 듣게 된 빠른 곡조의 신나는 춤이 곁들여진 옛날 노래를 듣다가
아, 이런. 갑자기 눈물이 흘러 내렸다.
마주보며 서로가 아무런 말없이 똑딱똑딱 흐르는 시간 나 이제는 알아요 그대의 마음을
돌리기엔 늦다는 걸, 마지막 인사없이 보내긴 싫어 조각조각 부서진 작은 꿈들이 하늘 멀리 저 멀리 흩어져 가고
젖은 눈물 감추며 되돌아 서는 사랑의 불시착.
사랑의 불시착이라니,
이 유치한 제목의 가사의 어느 부분이 내 마음의 한구석을 건드렸을까.
어쨌든,
우리의 지상에서의 시간은 똑딱똑딱 흐르고 있고,
이해못하리만큼 너무 큰 사랑의 말들은 다행히 기억에 없지만,
우리의 지구상의 착륙이 불시착이든,
그 흔했던 만남들이 사랑의 불시착이었든
이제는
무엇인가에 펄쩍 뛰어오를만큼 매료되기엔 너무 뭉툭해졌기에
사소한 소중한 것들에, 작아서 잘 들리는 것들에
잠깐식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