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말도 안돼

Tigerlily 2018. 4. 3. 13:11




시아버지께서 폐렴으로 입원하셨다.

노환으로 거동을 못 하셨던 터라 예상했던 일이었다.

지난 토요일, 지친 어머님을 대신하여 내가 종일 간병을 하였다.

호흡기 병동 창 밖으로는는 백목련이 흐드러졌고

독한 약 때문인지 대부분의 시간 아버님은 잠을 주무셨다.



'말도 안돼, 말도 안되는거지..'

아직 이성의 전깃불이 깜박깜박 들어올 때 마다 아버님의 입으로부터

그날 가장 많이 들은 소리는 이것이었다.


자신의 알몸을 속수무책으로 드러내 놓은 채

대변을 받아내는 며느리의 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며

입술을 달삭거리면서 겨우 내뱉는 소리. 



술이 거나해지면

큰며느리인 나의 손을 잡고 우렁차게 '나의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를 부르셨던 호기,

가끔씩 내게 교정을 부탁삼아 자작시를 자랑하시곤 하던 풍류,

행거 가득 걸렸던 서예작품과 방 안을 채우던 수묵 냄새,

더블버튼의 가다마이,


지금, 그것을 대신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말도 안된다는 말' 만큼 적절한 표현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우리들은 행복했다.

겨울이 끝나가려 한다. 우리는 전과 같은 별장을 빌리고 싶었는데 아마 주앙 레팡 근처의 것을 빌리게 되리라.

다만 내가 침대 속에 있을 때, 자동차 소리만 들리는 파리의 새벽녘

나의 기억이 이따금 나를 배신한다. 다시 여름이 다가온다.

그 추억과 더불어, 안느, 안느! 나는 이 이름을 낮은 목소리로 오랫동안 어둠속에서 되풀이한다.

그러자 무엇인가 내 마음 속에 솟아나고, 나는 그것을 눈감은 채 그 이름으로 맞이한다.

슬픔이여 안녕! -








병원 침대 옆 간이의자에서 읽은 프랑스와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의 마지막 구절이다.

짐작과는 달리 슬픔이여 안녕의 '안녕'은 'Goodbye' 아니라 Bonjour(Good morning)'이다.



아름다운 결말은 아니지만 주인공 세실은

자신의 계획대로 모든 것을 이루었고 또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싯점 앞에 있다.

그런데 마지막에 왜 그녀는 슬픔과 마주하고 있다고 한 걸까, 그녀의 슬픔의 이유는 뭘까?

모호한 슬픔이다.



이상기온으로 인하여 서둘러 핀 벚꽃들로 인해

세상이 온통 연분홍 마법에 걸린듯 화사하다..

마술이 그러하듯, 꽃이 지는 것 또한 순간이기에

꽃이 피면 나는 항상 불안하다.




아름다움 속에 이미 도사리고 있는 쇠락,

누구도 극복할 수 없는 삶의 누추,

어쩌면

19살의 사강은 그 때 이미

우리의 삶이 말도 안되게 쓸쓸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