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종 잡을 수 없는
Tigerlily
2018. 3. 21. 16:05
가끔 교회에서 바자회를 한다.
말이 바자회일 뿐
교회의 규모가 워낙 작은지라 헌옷가지를 서로 나누는 정도의 규모이다.
입다입다 싫증이 나는 옷을 내다놓으면
더러 가져가는 사람들도 있고
나 역시 입어볼까 싶은 옷을 주섬주섬 줏어오기도 한다.
재미난 것은,
그 옷들이 돌고 돈다는 것이다.
행여 입을까하여 줏어가고 줏어왔던 옷들은 결국 자기 옷이 되지 못하고
다시 바자회 마당에 걸리고
그 다음 바자회에서 그나마 내 눈에 번쩍 뜨여 뒤적거리고 있는 옷이란
언젠가 내가 내놓았다가 누군가 입을까하여 가져갔다가 결국 다시 내 놓은 나의 옷이다.
결국 내 옷을 내가 다시 가져온다.
춘분인 오늘, 눈이 내렸다.
산수유 꽃망울이며 잔망스럽게 돋아나던 조팝나무 새싹들,
예기치 못한 추위에 속수무책으로 눈을 뒤집어 쓰고 있다.
구태여 인디언썸머가 아니더라도
한번씩의 이런 이변, 이런 예기치 못함이 화들짝 참 신난다.
조바꿈의 변주처럼 난데없어서, 종잡을 수 없어서 무지 좋다.
예측가능한 사람은 변함없어서 평화롭다.
하지만 옷장을 열면 그 옷이 그 옷인 취향,
책장을 바라보면 그 책이 그 책인 선택....
지루함은 짧은 인생에 죄악이다.
시종일관인 나의 화투패를 알아보고
운명이 깜보기 전에, 호구 취급하기 전에 한번씩 확 비틀어 줘야한다.
설핏 잠들었다가 허방다리를 딛고 어이쿠, 번쩍 잠에서 깨듯
종잡을 수 없는 나의 선택에 얼라리,
속수무책의 황홀에 몸서리치고 싶은
눈 내린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