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시네아
둘시네아 델 토보소는 돈키호테의 연인의 이름이다.
기사들은 자신의 생명을 바쳐 보호하고 섬겨야할 여인을 한 명씩 두고 있었는데
둘시네아 공주는 편력기사를 자처했던 돈키호테에게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었던 이상 속 여인이었다.
'황금빛 머릿결, 엘리시움 들판 같은 이마, 무지개 같은 눈썹, 반짝이는 두 눈동자, 장밋빛 두 뺨, 산호빛 입술
눈처럼 하얀 피부, 상아빛 두 손, 대리석 같은 가슴...'
돈키호테가 묘사한 둘시네아 공주의 모습이지만
정작 그녀를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는 그것과는 판이했다.
여리여리한 공주가 아니라 시골농부로서 사내처럼 건장하고 투박한 여자일 뿐이었다.
어제 장례식장엘 다녀왔다.
중학교 동창 단체 문자로 부친상의 부고 알림이 왔지만
장례식장엘 갈 만큼의 친구는 아니라는 생각에서 접어두고 있었다.
퇴근무렵 친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윤미네 장례식장 안갔지? 너를 무척 보고 싶어하더라'
중 3 때 한반이었던 윤미는
앞뒤로 앉은 적이 있어서 잠시 친하게 지낸 시절은 있었지만
졸업 이후 한번 정도 스치듯 만난 적이 있을 뿐 전혀 교류가 없었던 터라
잊혀진 아이였다.
검은 상복을 입은 윤미는 나를 끌어 안고 눈물을 글썽이더니
'너를 정말 좋아했었어. 몇 번 고백하고 싶었지만 못했어'라는
난데없는 사랑고백과 함께 나도 기억 못하는 나에 대한 세세한 것들에 대한 기억을 토해내줬다.
기억해주고, 그리워해주고, 좋은 기억으로 채색해준
옛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아름답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형편없는 내게
둘시네아 공주라는 이름을 달아 준 친구의 고백이
황당하지 않게,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위한 작은 예의로라도
다소곳이 고운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