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내가 졌다.

Tigerlily 2017. 11. 27.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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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혜를 만났다.

 

지난 봄에 만나 차를 마신 후 처음이니,

거의 6, 7개월만에 만난 것이다.

먼저 전화를 걸어오는 일도,

문자를 보내오는 일도 드문 친구인지라

그런가보다..하고 지냈었다.

그런데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고, 초겨울이 되면서

차츰 화가 났다.

친구라고 해봤자

경숙이, 주혜, 

...

없다.

여럿이 만나 밥 먹고 수다 떠는 친구들이야 수북하지만

단 둘이 만나 마음의 작은 결까지 얘기를 나누는 친구는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는다.

없다, 그 사실을 모를리 없는 그 년이다.

걱정과 섭섭함을 넘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절대 내가 먼저 연락 안하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결국 내가 못 견디고 먼저 전화를 했다.

 

만나면 패버릴려고 했다.

악담을 퍼 부으려고 했다.

 

"너랑 나랑 무신 구질구질 말이 필요있다고 그냐"

주혜는 아~~~무렇지 않아했다.

엊그제 만난 듯 미안함도 없었다.

 

커피를 마시고, 갈치조림에 저녁 식사만 맛있게 하고 돌아왔다.

살짝 눈만 흘기고 돌아왔다.

 

내가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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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그동안 기도해주셔서 감사해요.

방금 교감으로 지명되었다는 연락왔어요"

 

오랫동안 같은 교무실에서

가장 가까운 동료로 지내 온 김쌤이 교감으로 지명되었다.

쟁쟁한 경쟁자가 세 명이나 있었던 까닭에

자주 기도부탁을 했기에 가끔 그를 위해 기도했었다.

그가 교감이 되기를 바랬었다.

 

 

 

 

그런데

그 문자를 받자마자

말할 수 없는 쓸쓸함이 밀려왔다.

급기야 제어할 수 없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나만,

나아지는 것 하나도 없이

내세울 것 하나도 없이

낡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걸까,

낮은 곳에 같이 있어주기로 한 벗들이

나만 강바닥에 남겨놓고 다들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생각한 걸까.

 

축하드린다는 건조한 문자 위로

눈물이 또르륵 흘렀다.

 

절친의 출세에 쓸쓸해지는,

나는,

매일 내게 지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