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괜찮습니다

Tigerlily 2017. 10. 10. 16:21

 

 

 

페이스북의  '알 수도 있는 사람' 명단에서

김정근이라는 이름을 봤다.

클릭하여 보니,

역시, 따라 웃지 않고는 못 배길, 얼굴 구석구석에 가득한 그의 밝은 웃음.

 

 

어른이 된 후

언젠가 국민학교 동창회에서 처음 김정근이를 보았을 때

내가 느낀 정체모를 안심이란 독특한 것이었다.

 

 

권태스럽게 늙어가는 표가

땅딸한 키와 불록 나온 배, 양복 위에 잠바대기를 걸쳐입은 입성에서 역력했지만

이 테이블 저 테이블 술을 권하며 다니는 소란한 허세 속에서

내내 그의 얼굴에 가득했던 순전한 함박미소만은 잊을 수가 없었다.

 

 

김정근이하고는

한번도 같은 반을 해본 적도, 성인이 된 후에도 얘기를 나눠본 적도 없다.

동창회 임원 일을 하면서 모임공지를 위해 단체 알림을 했던 게 접촉의 전부이다.

그는 그냥 '알 수도 있는 사람'일 뿐이다.

 

 

사실,

김정근이에 대한 기억은 김정근이 본인보다는

그의 부모에 대한 게 대부분이라는 게 맞을 것이다.

 

 

국민학교 시절,

툭툭 먼지를 차며 오가는 나의 무료한 등하교길의 중간 쯤에 그의 집이 있었다.

길가에 면해 있는 그의 집에서는 거의 매일, 아침부터 싸우는 소리가 났다.

엄청 뚱뚱한 그의 엄마는 항상 화가 나 있었고, 가끔은 취해 있었고 

거의 항상 취해 있는 아버지를 향해 악다구니를 쓰고 있었다.

안방까지 훤히 보이는 그의 집 안 여기저기에는 잔뜩 겁에 질린 아이들이 

널부러진 밥그릇이나 엎어진 밥상 사이사이로 강아지들처럼 고물고물 떨고 있었다.

매일, 같은 모습이었다.

'저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그 김정근이의 미소를 어른이 된 후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의 박꽃같이 화사하고 사금파리같이 단단한 미소를 보고서

얼마나 안심했는지 모른다. 그것만으로도, 그것만으로도...

'너는 어떻게 그렇게 삶을 아름답게 살아냈니'

 

 

말을 걸어 본 적도,

또 앞으로도 말을 걸 일도 없을 한 남자의 표정을 훔쳐 보면서

세상이 생각보다 온화하다는 것을,

우린 생각보다 힘이 쎄다는 것을, 

새삼

생각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