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송(電送)
#.1
바스락거리는 햇살,
뭉실뭉실한 구름,
그 사이 사이로 초가을의 공기가
너무 청명하여
사진을 찍어 봤다.
누군가를 향해 전송버튼을 누르면
그 사진 속에서
내가 보낸 연한 푸른 빛의 바삭거리는 공기가
잠시동안 그 사람을 감염시킬 것 같다.
#. 2
엄마집 강아지 백구에게 오랜만에 갔다.
주인 할매가 바람이 나서 집구석에 붙어 있을 때가 없고
그 할매의 막내딸인 나는 바빠서 개밥주는 여자의 역할을 소홀히 했다.
사죄하는 마음으로 참치캔 두 개를 샀다.
이런 특별식이 또 어디 있으랴.
우리 백구가 좋아서 훌떡훌떡 뛸 일을 생각하니
참치캔 사진을 찍어 미리 보내어 주고 싶었다.
사진을 보면 환장하겠지~?
010-1009-1009로 전송하면 되겠지?
#. 3
마음을 고쳐먹는다거나
'이젠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어" 따위의 노력을 해야하는 일이 참 싫다.
그 부분에 있어 노력의 무력함을 경험한 이후로는
어떠한 물리적 전투 도구는 하나도 없고
오로지 '마음'이 최전방에 나서서 힘센 상대를 진압해야하는 상황이 또 다시 나타날까
자주 겁이 난다.
그래서 갈수록 포기가 빨라지나보다.
난, 안할래, 항복, 항복, ..
# 4.
오랫만에 <오로라 스튜디오>에 갔다.
바쁜 월요일의 그림 공부.
잘 그리지는 못하지만 행복하다.
곰초밥, 동백꽃지니봄이다, 미자네꽃방, 카페디귿...
주차를 하고 잠시 걷는 골목길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상점들의 다정함,
푸른 출입문을 지나 올라가는 계단조차도 평안하다.
삼십대 후반의 그림 선생님과
비슷한 연배의 노처녀들의 지나치게 달관한 태도의 이야기를 들으며
팔레트에 짜 놓은 물감에 물을 개다보면
빙긋빙긋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내가 그들의 막내동생쯤 된 듯한 느낌이 든다.
"쌤~ 다음 주에도 꼭 보게요"
계단 끝에서 문짝을 잡고 전하는
피콕블루같은 음성의
노처녀 시오선생님의 전송(餞送)을 오래 오래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