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se for Emily

끌어안고 같이 죽고 싶은 글귀

Tigerlily 2017. 6. 7. 15:42

 

 

 

 

 

믿을 수 있는 나무는 마루가 될 수 있다고

간호조무사 총정리 문제집을 베고 누운 미인이 말했다

마루는 걷고 싶은 결을 가졌고

나는 두 세 시간 푹 끓은 백숙 자세로 엎드려

미인을 생각하느라 무릎이 아팠다

 

어제는 책을 읽다가 끌어안고 같이 죽고 싶은 글귀를 발견했다

(......)             .박준, <미인처럼 잠드는 날> 일부

 

 

 

 

 

미인을 끌어안는 건 좋은데,

그런 글귀는 발견하면 빨리 버릴 수 있어야 잘 산대.

끌어안고 같이 죽고 싶은 글귀, 그거 독이야.

확실해. 타고 강 건넌 뗏목 버리듯 얼른 버려.

끌어안고 죽을 때까지 함께 갈 거예요. 는 언제나 위험해.

사람에 대한 관성적인 관심법은 재앙이야.

- 이명수, <내 마음이 지옥일 때> 중에서

 

 

 

 

 

 

 

 

 

글귀가 되었든

일이 되었든

더구나, 사람이 되었든

끌어안고 같이 죽고 싶을 정도로

마음을 흠씬 빼앗길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죽고 싶을 만큼은 아니어도

마음이 쉬이 콩닥거리는

여전한 철딱서니 없음이 내게 있어서

참 다행이다.